슬픔은 갑자기 나에게 찾아왔답니다.
밤의 여왕이 망토로 덮어씌우듯 서서히 잡아먹었지요.
빛이 꺼지고, 가증스러운 웃음소리가 퍼질 무렵, 나는 눈을 잃게 되었답니다. 길을 잃고, 나를 잃게 된 것, 그것이 슬펐습니다. 그래서 밤이면 밤마다 악마의 꾐에 이끌려 춤을 추게 되었답니다.
불행은 길 위에 선 자들만의 특권이랍니다. 그 끝을 알기에, 너무 많은 것을 깨달았기에 누리게 되는 끔찍한 저주랍니다. 드넓은 바다의 그 작은 진주를 찾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일 뿐, 그래, 그저 그럴 뿐입니다. 자비, 꿈은 고통 속에서 들려온 나지막한 비명일 뿐입니다. 당신의 빈 공간은 그것으로 채워진답니다.
허무는 모든 것을 잡아먹는 괴물이랍니다. 먹지 않고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공허함이지요. 지금 쓰는 글의 글자 하나하나까지도 한 줌의 재로 만드는 불은 세상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입니다. 허무는 만물이자 공허, 끝이자 근원입니다.
괴물들은 나를 서서히 집어삼켰습니다. 나는 결국에는 잠식된 것입니다. 오직 슬픔, 증오, 공허만이 남았습니다. 나의 창조물에 휩싸여 진정한 모습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그것이 나를 모방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한 비명을 지르는 나는 눈물도 말라붙어 누구도 보지 못하는 흐느낌만 느낀답니다.
누구인가요? 나의 한가운데를 한 순간에 잡아먹고 유유히 떠난 이는 누구인가요? 나의 마음에 구멍을 뚫어 무엇에다 쓰려고 그런 것일까요? 답은 돌아오지 않고 채운 것은 오직 문장을 끝맺는 물음표뿐이랍니다.
행복을 증오하게 된 것은 언제일까요? 나에게 불행이 찾아왔을 때? 공허함이 되살아나 검은 안개를 흩뿌릴 때부터? 아니면 태어나기도 전에, 천지가 개벽하기 전부터인가요? 이 증오의 기반은 무엇일까요? 행복을 적나라하게 질투하는 불행의 발자국인가요, 가면에 덮어쓰인 얼굴 이면의 그림자일까요?
십자가 걸어놓고 두 손 모아봤자 의미 없다는 거 알고 있답니다. 그런데도 무언가를 바라고 비는 이유는 하나라도 얻어걸리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일까요. 차라리 십자가를 뒤집어 바꾸는 게 빠르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불행을 찾아 떠나 나섭니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불행으로부터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마치 보물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불행을 더 깊이 파고들어 가기로, 뿌리칠 수 없는 그에게 나약한 주먹을 날려 보기로 결정한 것일까요?
별을 셉니다. 하나하나 밤하늘에 박힌 별을 셉니다. 별은 두 손안에 담기겠군요. 증오스러운 오색 빛은 결국에는 암흑에 흩뿌려진 별들을 먹어치우게 됩니다. 참 아름답기도 하네요.
공자는, 소크라테스는, 니체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에게 물어봤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을 뿌리치고 홀로 서게 됩니다.
만물은 한데 뒤섞여 공허가 되고, 인간은 모이면 추악해 보입니다. 좋게 보이는 것이 참말로 없네요.
어차피 천 년 뒤면 이 모든 것도 무의미하다고, 그 모든 것이 잊힐 것이라고 스스로 달래 보지만, 나의 불행은, 아니, 불행 속에 갇힌 희망은 그런 궤변을 받아들이지 않는답니다.
슬픔을 받아들일 곳은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저 문이 잠기지 않은 집에 몰래 들어갈 뿐이죠. 어떻게 보면 도둑이지만, 훔쳐가지 않고 영원히 죽치고 앉아있을 뿐이랍니다.
슬픔을 진 자를 받아들일 곳도 어디에도 없답니다. 두 번째 기회, 관용, 이런 건 개나 고양이에게서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네요. 저는 그런 세상이 증오스러워 슬픔을 손님으로 받아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기에 슬프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허무하기로 했고, 그렇기에 공허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불행하기로 하였고, 그렇기에 사람을, 세상을, 만물을 증오하기로 하였답니다. 그렇기에 나는 잠식되었답니다.
그렇기에 나는 일말의 단서 없이 행복을 찾아 불행을 향해 떠나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