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빼앗기다
by
아포리스트
Sep 1. 2024
빼앗겼습니다.
원래 제게 있었던 것들을요.
웃음을 빼앗기고, 눈물을 빼앗기고, 희망, 절망을 빼앗겼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빼앗겼답니다.
되찾고 싶네요. 역시 가져서는 안 됐던 금지된 것들은 늘 되찾고 싶은 법이지요.
부스럼과 피부병을 치료할 유일한 해독제를 줬다가 빼앗을 건 뭔가요. 애초에 주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 아닌가요?
색이 사라지는 저를 바라보면 참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답니다. 아니, 가슴이 찢어질 권리도 시간도 빼앗긴 지금이랍니다.
마음속에 뚫린 구멍들은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이 쌓아올린 이성과 냉기로 가득 채워진답니다. 완벽한 대체제라 이름붙인 그것들은 하나하나 자리를 빼앗아 결국에는 지배하게 되었답니다.
의미도 없는 사랑과 선함, 상냥함을 머릿속에 두고 있을 필요가 없다며 저를 채워 넣는 당신들, 당신들 이성은 차갑게
얼어붙이기만 합니다.
그것이 불쾌할 뿐이랍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은 오늘을 허락하지 않고, 저녁노을과 붉은 구름을 바라볼 시간은 줄어들기만 합니다. 어제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내일을 향해 거절당한 날을 건너뜁니다. 아름다운 나날들을 다음날로 보냅니다.
화양연화는 저 멀리에 두었더니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놓쳐버렸답니다. 푸른 하늘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기만 하고, 상쾌한 바람은 우울한 시상을 자극한답니다.
대스승들의 답은 물음이 없었고 물음에 대한 답은 이제는 들을 수 없답니다. 결국에는 조상의 조상을 껑충 뛰어넘어 글자 너머의 창문 밖에서 정답을 찾으러 가게 되었답니다.
모든 대답을 정답으로 하는 답이 없는 물음을 뒤로하고 기대던 곳에서 독설만 돌아오는 이 환멸감은 물음이 나를 지배하도록 문을 활짝 열어준답니다. 결국에 남은 것은 논리가 쌓은 이성뿐이랍니다.
누가 나를 빼앗았는지 몰라 결국에는 모두의 탓으로 돌려 그를 증오하게 되었답니다.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해 결국 만물로부터 돌아서게 되었답니다.
나의 푯말들을 되찾고 싶습니다. 나였던 것들을 모두 돌려받고 싶다고 정체도 모르는 주체에게 마치 패배한 늑대처럼 부르짖어봅니다.
불씨만 남은 희망은 기다림을 속삭여보지만 푸른 하늘은 이미 절망을 불렀답니다. 빼앗기지 않은 사랑은 이성이 식혀 실망이 되고
슬픔이
되었답니다. 그 절망과 실망은 눈물이 말라붙어 쌓여만 가고 결국에는 파괴적인 염세가 되었답니다.
나를 빼앗겨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아직도 나 자신을 사랑했기에 모든 것들이 공허하고 허무했답니다.
푸른
하늘을 보고 웃고 싶습니다. 비가 내리면 결국엔 무지개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슬픔과 절망뒤엔 마침내 행복이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그런 나를 다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아직도 하늘이 푸르고, 가슴이 찢어집니다.
keyword
우울
에세이
11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아포리스트
삶에 있어서 도움이 될 말들을 담았습니다. 제 글을 읽고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분이 되기를.
팔로워
6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잠식
종점에 대한 고찰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