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시댁에서 할아버지와 신나게 노는 아이를 보며 우리 아이는 참 복도 많다고 생각했다. 시부모님께서는 연세보다 훨씬 활기차게 손주들을 대해주시고 늘 적극적으로 손주들에게 여러 경험을 시켜주시며 다정한 애정표현도 많이 하시는 편이다. 그런 가정 분위기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자면 내 아이는 복이 많은게 맞는 것 같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었으나 화사한 가정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무뚝뚝한 편이셨고 친가 조부모님은 멀리서 농사를 지으셔서 자주 뵐 수 없었으며, 후에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사시면서 바쁘신 부모님 대신해서 나를 키워주셨는데 외할머니는 워낙 개성이 강하신 분이셨던지라 손주라고 해서 특별히 애정을 갖고 계시진 않았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사랑 표현이 참으로 어려운 집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성장할수록 내 마음을 드러내는 것보다 숨기는 것을 더 잘하게 되었고 애정이 있어도 돌려 돌려 행동으로 드러낼지언정 말로써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 성격이 되었다.
그러던 내가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며느리라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에 이 위치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흔히들 며느리라 하면 살갑고 다정하게 시부모님을 대하는 모습이 익숙하고 또 시부모님께서도 그것을 기대하실 것 같으신데, 나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아버님을 뵙기 전 남편과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을 들으면서 어떤 분이신지 어림짐작을 한 적이 있다. 사실 내 남편도 굉장히 다정한 말투를 가진 남자인데, 시아버님께서는 더욱 그러하셨다. 다 큰 아들에게 말씀 하시는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하게 남편을 대하셨고 일상에 대해 자연스럽게 물어보셨고 애정표현도 숨기지 않고 하셨다. 당시 남편이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주말에 집에 오겠냐고 물으셨고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집에 갈 것이라 대답했다.
안 그래도 자취하는 남편이 주말마다 서울 본가에 가는 것에 대해 나는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내가 하는 질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냥 가족이랑 같이 있는 시간을 내려고 가는거지’ 나에겐 이 대답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나도 대학시절 자취를 한 적이 있는데 떨어져 사니 혼자만의 생활에 편해져서 부모님을 뵈러 가는 일이 꼭 숙제같이 힘들었었다. 가족끼리 같이 보내는 시간이라는 것은 생일 등 행사에서나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른 우리이니 결혼을 생각했을 때 참 생각이 많아졌다. 남편이 우리 집에 적응하는 것보다 내가 적응하는 문제가 훨씬 더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생각만 많았을 뿐 결혼해서 특별히 시부모님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갈등한 일은 없다. 시부모님을 종종 뵈면 인사드리고 식사를 같이 하고 사는 얘기 잠깐하고 그 뿐이었다. 사실 이런 며느리에 대해 시부모님께서 만족하셨을 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시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어떠한 불만도 없으셨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셨다. 물론 며느리라고 누구나 다정해야 하고 애교를 부려야 하고 그런 법은 없지만 사회적 통념이라는 것이 있기에 분명 시부모님으로써 나에게 바라시는 바가 있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저 항상 너희끼리 잘 살면 된다 하실 뿐이었다.
그럼에도 신혼 초에는 시댁이 어색하기만 할 뿐 그리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고 살지는 않았다. 그랬던 내가 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이 출산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무뚝뚝한 나지만 아이에게는 다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다. 아이를 대할 때 혀가 짧아지는 엄마들을 보면 왜 그러나 싶었는데 내가 똑같이 되고 있었다. 자식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내가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것들도 다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니 내 아이가 가족 안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도 점점 커졌다. 아이를 낳고 나니 나 하나 잘났다고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이 아니고 남편과 나의 합심도 중요하고 조부모님 친척들 등의 사랑도 아이에게 큰 양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은 매주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간다. 아이가 워낙 조부모님을 따르고 조부모님께서도 쉬시는 날 아이가 오는 것에 대해 전혀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고 행복으로 생각하신다. 아이가 다섯 살 되면서부터는 나랑 떨어져 자는 것에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금요일마다 시댁에 가서 할아버지 옆에서 잠을 잔다. 시아버님께서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시고 나서 운전을 해서 우리 집 근처로 오셔서 아이를 데리고 가곤 하신다. 바쁘고 피곤하신 와중에도 다섯 살 아이의 칭얼거림에 흔쾌히 응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에 사랑이 벅차오르곤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사실 나도 많이 변했다. 처음에 시부모님을 대할 때 너무도 어색하고 힘들어서 시댁에 가면 늘 입을 닫곤 했는데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소소한 농담도 하곤 한다.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않았던 감사하는 마음도 생기게 되었다. 그저 너희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예전의 나는 진짜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씀을 하시는 시부모님의 사랑을 알고 있고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깊은 감사를 느끼곤 한다.
얼마 전 금요일 밤 시아버님께서 일을 마치시고 우리 아이를 데리러 집에 오셨다. 아버님 차에 자연스레 올라 ‘엄마 안녕!’ 하고 가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사실 복이 많은 건 우리 아이가 아니라, 아이로 인해 이러한 새로운 행복을 알게 되고 또 하나의 가정을 갖게 된 내가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