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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May 10. 2023

어버이날에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난장판


나는 새로운 사업 준비로 굉장히 바쁘게 지내고 있다. 남편이랑 가진돈 , 모은 돈을 탈탈 털어서 카페를 해보겠다고 가게를 하나 인수해서 곧 오픈 예정에 있다. 거의 우리가 가진 돈을 다 쏟아부은 셈이라 이게 망하면 우리는 진짜 큰일난다 이 생각이 매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압박감과 동시에 오픈 준비해야 할 것들이 소소히 많다보니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날짜가 어떻게 되는지 가늠도 못하고 살았다. 그저 하루 하루 정해진 일을 쳐내기에 바빴다.


집안은 언제나 난장판이다. 하루의 끝은 언제나 아이가 어지럽혀둔 장난감을 정신없이 통에 담고 대충 한번 물티슈로 바닥을 훔쳐내고 아이 것 급한 설거지거리만 몇개 하고 기진맥진 잠을 잔다.


저번주 금요일에 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든 카네이션을 갖고 왔다. 그제서야 어버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에는 5월이 되기 전부터 어버이날을 신경썼는데 (그렇다고 대단하게 행사를 벌이진 않았다) 이번해에는 날이 가까워져 왔는데도 인지조차 못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싹싹하게 무슨 날 같은 걸 잘 챙기는 성격은 아니다. 본래 감정 표현 안하는 무뚝뚝한 성격이기도 하고 인사치레 하는 것을 싫어한다. 어른들이야 그런 것을 기대하시겠지만 나로써는 그게 참 민망하고 쑥쓰러워서 늘 회피하곤 했다. 


어머님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 부모님이야 그런 내 성격을 익히 알고 계시니 대충 이해해주신다고 쳐도 시부모님께서는 며느리인 나에게 무언가 막연히 기대를 하지 않으실까 하는 부담감이 늘 있었다. 5월이 되면 늘 마음속에 무거운 짐이 생긴 듯 했다. 이번에는 뭘 선물을 드려야 하나, 언제 전화를 드려야 하나,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며칠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정신이 없긴 없었는지 어버이날 바로 전날 주말까지도 그냥 시간을 보내버렸다. 분명 어느순간까지는 전화 한통이라도 드려야지 생각했던 것 같은데 딱히 한 일도 없는데 그걸 까먹어버렸다. 그리고 어버이날 오후 때 쯤이나 되어서야 아차 오늘이 그 날이지 하고 떠올랐다.


마침 또 아이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이 되었다.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놀이터 가자고 조르고 놀이터에서 한바탕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저녁. 


저녁이 되어서 아이 쫓아다니느라 빠졌던 기운을 조금씩 충전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보니까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조금 놀란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조금 민망한 마음에 대뜸 먼저 그랬다.


"제가 먼저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평소에도 자주 얼굴도 비추지 않는 며느리. 뭐 하나 잘해드리지 못하는 며느리다. 마음은 부자되어 노후에 호강시켜드리고 싶은데 실제는 호강은 커녕 보통도 못하고 있는 형편없는 성적이다. 그럼에도 그냥 너희들끼리 잘 사니까 좋다면서 정말 한마디 말씀도 없는 어머니시다. 생각해보니 이런 날이라도 먼저 전화 드려 입 발린 말이라도 한번 했으면 좋았을걸 싶었다. 그것조차 못한 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개의치 않으시는 듯 그냥 안부차, 또 남편이 용돈을 계좌로 부쳐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마워서 내게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그냥 아들에게만 얘기하시고 나에게는 전하라 하셔도 되는데 나에게 직접 전화해서 얘기해주시니 나로써는 고마운 일이다. 더욱이 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로써는 어머니께서 먼저 얘기해주시는 그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래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한동안 어머니를 뵈러 가지 못해서 몇 분간 그동안 안부도 묻고, 카페 오픈 준비 하는 얘기도 하고 그랬다. 설명 겸 변명 겸 그랬다.


"가봐야 하는데 하고 생각은 하는데, 사실 벌려놓은 일이 있어서 너무 바쁘네요."


그러니까 그냥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바쁘겠어. 그럴수록 몸관리 잘해야 한다. 몸 아프면 너만 손해야. 신랑이 알아주기나 하니."


그 말에 어머니랑 나랑 같이 웃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의아하게 본다. 전화를 끊고 나니 뭐가 재밌어서 웃었냐고 그런다. "우리끼리 농담이야" 그러고 그냥 웃어넘겼다. 


5월은 항상 내게 부담스러운 달이었다. 자식도리 며느리도리 이런 것들 다 벗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뭔가 표현해야 한다는 그 자체가 내게는 늘 짐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가족이란 가벼운 전화로도 서로 웃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짐스러운 맘보다는 그 소중함을 늘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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