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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l 09. 2023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한 일이지만

부족한 엄마만 되고 있다

요즘 나는 카페를 창업했다. 카페 영업시간은 아침 여덟시부터 밤 여덟시.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해서 8시에 카페 문을 연다. 그리고 아침 시간과 오후시간까지를 카페에서 장사를 하고 4시가 되면퇴근을 해서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온다. 나머지 시간은 동업을 하는 친구 동생이 가게를 본다. 평일에는 이러한 일과를 보내고 있고 주말에 바쁠 때는 아침부터 끝나는 오후 8시까지 카페에 내내 있을 때도 있다.


평일 보다는 주말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 주말에 카페가 붐비는 일이 많다. 그럴 땐 친구가 혼자 가게를 보기 힘들어서 나도 돕다보면 밤 8시까지 시간을 꽉 채워서 일할 때도 있다. 그렇다보니 주말에 아이를 보는 일은 남편의 독박이 되어버렸다. 


이는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주말엔 유치원이나 학원을 가지 않기 때문에 깨어있는 시간을 오롯이 아이와 보내야 한다. 아직 6살이라 특별히 혼자 할 일은 없고 부모가 개입해서 놀아줘야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아이는 방에서 혼자 놀다가도 금방 나와서 같이 놀이할 엄마 아빠를 찾곤 한다. 그래서 주말에 아이를 보고 나면 남편은 녹초가 되어버리곤 했다.



고생하는 건 남편 뿐은 아니다. 아이도 그렇다. 아무래도 아빠의 손길이 닿는 건 내 눈에 전부 어설퍼보인다. 옷을 입힌 것, 식사, 간식 먹는 것 전부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다. 세심한 케어가 필요한 나이인데 어쩐지 아이가 꼬질꼬질해보이곤 한다.


그래도 특별한 선택지는 없고 사실 그것이 아빠가 해야할 일이기도 하기에 우리 부부는 서로 각자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었다. 아이는 평일에 유치원, 태권도 가고 주말에는 아빠와 지내는 일상을 무난히 적응하며 잘 보냈다.


그러나 무난히 지낸다고 해서 허전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아이는 내가 시간을 통째로 비우는 주말이 되면 나를 찾는 횟수가 는다고 한다. 엄마가 보고싶다고 하거나 엄마를 보러 가게를 가자고 조르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6시에 일어나면 귀신같이 그 소리를 듣고 내 방 침대로 와서 안아달라고 칭얼대기도 한다.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둘이 자곤 했다.) 


오늘 6시에 역시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멀리서도 내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는지 아이가 잠에 덜 깬 눈으로 내게 왔다. 잠이 가득한 얼굴로 희미하게 웃으면서 "오늘 아빠랑 수영장 가" 라고 한다. 안쓰럽고 애틋하고 귀여워서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는데 몸의 온도가 심상치가 않았다. 깜짝 놀라서 바로 체온계를 들고와서 체온을 재보니 38.4도. 이마를 짚어보니 확실히 뜨거웠다.


"오늘 수영장 못가겠다. 아빠랑 집에 있어야겠어." 그러니까 그 때부터 아이는 칭얼칭얼댔다. 엄마도 없는 주말에 기대할 거리는 아빠와 수영장을 가는 것 뿐이었는데 그것이 무산 되었다니 실망이 큰 것 처럼 보였다. 간신히 아이를 달래고 침대에 눕혀 놓고 나는 나대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자기도 같이 가게에 가자면서 졸랐다. 그마저도 모른척 하기는 어려웠다. 아침 8시부터 당장 손님이 오지는 않으니 한시간쯤은 같이 음료를 마시면서 카페에서 얘기도 하고 그럴 마음으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출근을 했다. 평소에는 간단히 화장품 정도를 넣고 다니는 가방인데, 오늘은 가게에 가서 아이에게 줄 주전부리와 혹시 열이 심해지면 먹일 해열제 약 등등을 챙겼다.


아침에는 오픈 준비를 하고 보통 9시 이전에는 손님이 거의 없는 편이다. 아이는 내 가게에 오면 내가 타준 핫초코를 먹으면서 그림 그리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것 마냥 아이만 오면 한적하던 카페가 손님들로 북적거리게 된다. 평소라면 사람이 거의 없을 8시 좀 넘은 시간에 손님들이 와서 소소하게 커피, 음료 등을 사가시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커피를 준비하는데 아이는 괜히 내가 있는 카페 주방을 기웃거렸다. 


손님들이 아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소리를 내는 걸 거북하게 여기실까봐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음료 하나를 급히 만들고 남편에게 얼른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일요일에 오픈하는 병원을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이는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제대로 안녕도 해주지 못하고 나는 커피를 뽑아서 손님들에게 내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가 가고나니 신기하게도 카페가 또 조용해졌다. 음료 병들과 음료 제조를 하고 남은 그릇들을 설거지 하고서 한숨 돌리면서 화장을 정리하려고 가방을 열었다. 


가방에는 아이가 채 먹고 가지 못한 해열제와 과자가 데굴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못내 서운해하며 가던 아이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울컥하는 심정을 애써 정리하고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이미 일요일에 여는 소아과에 도착해서 정신이 없어 보였다. 급히 전화를 끊었다. 한참 아이가 놓고 간 과자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카페를 시작했다. 바빠서 아이를 제대로 봐주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늘 스스로 위안을 하곤 했다. 더 큰 목적이 있으니 사소한 것들은 조금 포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다독이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리 마음을 정리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없이 부족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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