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채우는 것은 대화가 아닌 오랜 침묵이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by 준형박



가호쿠는 현재 연극제에 초청되어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라는 희곡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점은 가호쿠가 연출한 연극에는 다양한 나라의 언어가 쓰인다는 점이다.


일본 연극에서 대만인 배우는 중국어로, 한국인 배우는 한국어로,


심지어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는 수화로 대사를 이어나간다.



사용하는 언어는 달라도 배우들은 동일한 플롯을 하나의 흐름으로 함께 끌고가고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속도에 공감하고 이질감 없이 자신의 대사로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이 장면에서 깨달을 수 있던 점은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언어' 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라는 점이다.


가호쿠의 연극은 '언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배우들이 자유롭게 본인의 이야기를 뿜어낼 자유를 선사했다.



그러다 '가호쿠' 와 그의 운전사 '미사키'가 극장 기획부에서 일하는 한국 남성 '윤수'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이때 '윤수'는 하나의 비밀을 밝히는데 기획부 '윤수'의 아내는


연극에서 소냐 역을 맡은 언어 장애를 가진 여자 배우 '유나' 였다.


이들은 함께 저녁을 먹는데 식탁에서는 3개의 언어가 혼재되어있다. 한국어 / 일본어 그리고 수화까지.


그럼에도 이들의 대화에는 어떠한 혼란이나 어색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호쿠'의 웃음을 봤을 정도로 너무나 따스한 장면이었다.



아내가 사망하기 전 같은 언어(일본어)를 쓰는 본인의 아내와도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 '가호쿠'는


이 식탁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 지 상상을 해보았다.


자신은 이렇게 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허탈함이었을까? 새로운 소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었을까?



'가호쿠'는 차에 타면 꼭 아내가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준 연극 [바냐 아저씨]의 대사를 듣는다.


이것은 그에게 루틴이자 습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운전사 '미사키' 에게도 차에 타자 마자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아


이 테이프를 듣는 행위는 그를 구속하고 있는 의무감에서 나오는 하나의 의식으로도 느껴진다.

하지만 점점 극중 시간이 흐를 수록 이 차안에는 과거에 머물러있는 카세트 테이프가 아닌


작중 인물들의 솔직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소리가 채워진다.


운전사 '미사키'의 가정사, '가호쿠'가 아내와 멀어지게 된 이야기 같은


작중 인물들의 솔직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소리가 채워진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자신이 힘들었음을 고백해낸다.


과거의 상처에 갇힌 사람들을 다시 살게 만들어주는 것은 본인의 이야기에 다시금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본질을 찾다 잃어버린 '나' 라는 존재의 힘을 되찾았을 때 이들은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다.



최근에 본 다른 일본 영화들과 연결점이 떠오르기도 했다.


첫번째는 <퍼펙트 데이즈> 와의 연결점이다.


<드라이브 마이카> 는 운전수 '미사키'가 한국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호쿠'가 끌던 자동차에 혼자 올라 뒷자리에 앉은 강아지와 함께 운전을 하며 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녀의 얼굴에서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그리고 한껏 가벼워진 마음의 평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 퍼펙트 데이즈 > 또한 청소부 '히라야마'의 이동을 도와주는 자동차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엔딩장면 또한 운전을 하는 '히라야마'의 표정이 클로즈업 되며 마무리된다.


왼쪽 : 드라이브 마이 카 엔딩 씬 / 오른쪽 : 퍼펙트 데이즈 엔딩 씬


다만 '히라야마'의 표정에는 웃음과 울음이 함께 섞여 있다는 점이 차이나긴하지만


작중 모든 일들을 지나가 다시 일상 앞으로 돌아간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는 점이 비슷했다.




두번째는 <슈퍼 해피 포에버>와의 연결점이다



피상적인 점은 두 영화의 남자 주인공 모두 최근 아내를 잃은 상실에 빠져있는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다.


또한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전체 영화를 관통하는 장치가 사용되고 마지막에 이 장치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왼쪽 : 드라이브 마이카 / 오른쪽 슈퍼 해피 포에버

<드라이브 마이카> 에서는 주인공 '가호쿠'가 끌던 자동차를


그와 대화하며 친해진 운전수 '미사키'가 타고 있으며 마무리 된다는 점과


<슈퍼 해피 포에버>에서는 주인공이 찾아다닌 그의 아내 ' 사노 나기' 의 핑크색 모자를


그녀와 대화하며 친해진 호텔 청소부 '안' 이 쓰고 있는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이 연결된다.



의미적 공통점은 주인공 두 남자의 과거 기억을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 자동차 / 빨간 모자) 가


다른이에게 넘어가며 두 남자가 다시금 살아갈 것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있다는 것이다.

왼쪽 : 드라이브 마이 카 / 오른쪽 : 슈퍼 해피 포에버




드라이브 마이 카는 상실에 대한 영화다.


그래서 슬프다.


하지만 각자의 아픔에도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여기 있다는 사실에


나또한 내일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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