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한 여자에 대해 말하기를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나, 분위기를 산뜻하게 해 준다"라고 말했다. 한 여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백인가?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은 고백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그런데 그 후로 그 말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남자가 틈틈이 베풀어주었던 매너 있는 행동에 그 남자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자기에게도 관심 좀 가져 달라는 등의 알 수 없는 말을 했을 때 여자는 그 남자도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여자에게 그 남자의 외모, 말투, 성격 등이 평소 자기가 선호하던 것과는 너무 달라 처음부터 호감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남자와 함께 있었던 날이면 이틀 동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한 여자는 자기의 마음을 누르다가 결국 고백하기로 다짐한다.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저녁 드실래요?"
메시지를 보내놓고 혹시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휴대폰을 한참 뒤에 확인했다. 20분 만에 답이 와 있었다. 긍정적인 답이었다. 다음 날, 한 여자는 너무도 부끄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나갔다. 한 남자와 같이 있는데 많은 지인들이 지나갔다. 교제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식사 자리에서 한 여자는 자기 마음을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존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 칭찬과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날따라 그 남자가 더 멋있어 보이고, 우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한 여자는 한 남자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자신이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통화를 해서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장이 있었지만, 한 남자는 한 여자와 차분하게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 한 여자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마지막에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어떡하죠?" 라며 조심스레 마음을 표현했다. 한 남자는 언제든지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농담을 하며 한 여자를 안심시켰다. 한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잘 전했다고 생각했다.
출장 중에도 카톡을 주고받으며 한 여자는 기뻤고, 그다음 주가 되어 차를 마시기로 했다. 한 남자는 이미 간식을 먹어 배가 안 고팠지만 한 여자를 식당으로 데려가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날 저녁은 한 여자가 샀다. 카페로 이동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깊이 나누고 헤어졌다. 한 남자는 오늘 맛있는 저녁 사줘서 고맙다며 카톡을 보냈다. 한 남자의 마음이 보이지 않아 의심하던 여자는 그 카톡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그 후로도 카톡을 주고받으며 한 여자는 한 남자를 자신의 지역으로 초대했다. 하루 투어를 시켜주려고 했는데 한 남자의 바쁜 일정으로 휴가도 쓸 수 없어 토요일 오전을 겨우 냈다. 한 여자는 한 남자를 요가원에 데리고 가서 몸을 풀 수 있도록 했다. 한 남자가 요가를 하고 누워있을 때 몸이 개운했다는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요가원 원장님은 둘의 관계를 돕기 위해 그 여자가 그 남자를 좋아해서 여기에 데리고 온 것을 직접 말하였다. 한 여자는 너무도 당황스러웠지만 의연한 척 넘어갔다. 한 여자는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남자를 위해 빵과 차, 물을 준비하여 헤어지기 전에 건넸다.
한 여자는 한 남자가 한 여자의 마음을 너무 직접적으로 들었으니 그에 대한 답을 해주기를 바랬다. 교제를 시작하자거나 아니면, 우리는 여기까지만 만나자거나 둘 중 하나를 확실히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남자는 덕분에 즐거웠다는 메시지 외에는 다른 말이 없었고 그 후로 연락이 없었다.
한 여자는 자신이 너무 매달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한 남자에게 매일 보내던 메세지를 멈췄다. 그러다가 아예 연락을 안 하면 자신의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할까봐 불안한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보냈다. 만나자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한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날 때마다 아주 반갑게 먼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한 여자는 덜 바빠지면 연락 달라고 밥 먹자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한 여자는 이런 상태로 지속되는 관계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자신의 일에 집중하며 한 남자의 일을 마음으로 메세지로 틈틈이 응원하고 생각하며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을 보냈다. 한 여자는 한 남자가 회사가 너무도 바쁜 시기라서 교제를 시작하자는 말을 꺼내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기다렸다. 자신의 감정이 무시받는 것 같아 화가 날 때도 있었고 불안하여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한 여자는 인내하며 그 고비들을 잘 넘겼다.
9월이 되었다. 한 여자는 이제 이 관계를 확실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마음을 담아 새벽에 일어나서 두 시간 동안 편지를 썼다. 한 남자를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그런데 한 남자는 그날 마침 출장이라 오지 않았다. 통화라도 하려고 했지만 한 남자는 일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여자는 너무도 속상한 마음을 누르며 한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남자의 애매한 태도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정은 너무나 소중하고 그냥 생기는 것은 없는데 그 감정을 듣고도 시간을 내어 답변을 하지 않은 것이 별로인 것 같다는 것이다. 여자는 자기가 한 달 넘게 참고 인내했던 시간이 힘든 시간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이 관계를 명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는 한 남자에게 저녁을 먹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정리를 하더라도 만나서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한 남자는 주말 출근 예정이라서 안 된다고 답장이 왔다. 한 여자는 같이 저녁 먹을 시간도 없다는 생각에 슬펐다. 얼굴 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려고 만날 날을 계속 기다렸던 그 말,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편지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썼던 그 말을 짧은 메세지에 압축하여 담았다. 여자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용기내어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슬아 작가 덕분이었다.
"제 감정을 아신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먼저 연락이나 말씀이 없으셔서 제 마음에 대한 거절로 들립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될까요? 그런 거면 앞으로 연락하지 않을게요."
한 여자는 남자의 답이 Yes, or No일거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한 남자의 답은 여자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한 남자는 물음표 두 개와 함께 여자가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껴본 적 없으며 우정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 여자는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그러면 통화할 때 나누었던 이야기는 다 무엇이며 수시로 주고받았던 카톡이나, 요가원에서 직접적인 고백의 말을 듣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말일까? 한 여자는 너무도 기가 막혀 더 이상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았고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한 남자를 카페에서 만났다. 한 남자는 명랑한 목소리로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었다. 한 여자를 보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한 남자. 한 여자는 허탈했다. 한 여자는 혼자 앉아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다가 그 자리를 얼른 떠났다.
저 남자는 내 감정을 알고도 아무 느낌이 없었던 걸까?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좋아하며 혼자 애태우며 몇 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 남자는 정말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었던 것이다. 그냥 연락이 오면 답장을 보냈고, 만나자고 했을 때 시간이 되면 만났던 것이다. 심지어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집중해서 일대일로 계속 연락하는데도 여자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한 여자는 충격을 가라앉히느라 하루가 걸렸다. 그래도 예전처럼 자신의 잘못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다. 그냥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라고, 각자 언어의 세계가 너무도 달라 서로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잘 되었어도 힘들어졌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동상이몽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언어가 어떤 이에게는 매우 직접적일 필요가 있나 보다. 한 여자는 한 남자가 먼저 사귀자는 말을 해주는 게 맞다고 배워 기다리며 기회를 주었지만, 한 남자는 알지 못했다. 한 여자가 지치고 지쳐서 마지막 한 수를 두었을 때에야 비로소 본인의 감정을 표현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만나보면 어떨까요?"
"당신에게 다른 사람 이상의 감정을 느낍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자도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꺼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상대의 감정을 알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하기에.
한 여자는 동상이몽으로 보낸 그간의 시간이 아깝지만 씁쓸한 교훈과 또한 자신을 돌아보고 돌볼 기회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너무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안정성은 0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볼 가능성은 다시 100%가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