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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16. 2024

살상용 수류탄을 내 발에 떨어뜨리다

사람을 죽이는 수류탄은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난 직후 약 3초 후 터진다. 나는 이 살상용 수류탄을 내 발아래로 떨어트렸고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 


 나는 다한증 환자다. 초가을을 시작으로 한겨울을 지나 꽃샘추위까지, 내 손과 발은 땀으로 흥건해서 하루종일 축축해져 있다. 2011년 봄, 대한민국 남성이면 흔히들 다녀오는 군대에 입대했다.

 고된 훈련의 연속에서 점차 훈련병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을 즈음, 다음 훈련이 수류탄 훈련이라는 조교의 공지를 들었다. 첫날은 수류탄에 대한 이론 훈련과 수류탄을 던지는 법, 잘못 던졌을 때 피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진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살상용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가짜 수류탄(공포탄이라고 보면 되겠다.)으로 던지기 연습을 했다. 드디어 둘째 날, 언덕 위의 수류탄 훈련장에서는 이미 다른 소대가 훈련이 한창이었다. 매캐한 수류탄 화약냄새가 바람을 타고 언덕 아래 막사까지 흘러왔다. 수류탄이 호수 밑바닥에 꽂혀 거북스러운 폭발음을 품어댔다. 언덕을 오르던 우리 소대는 두려움, 걱정, 긴장, 떨림, 흥분, 설렘 따위의 감정들을 조급하고 둔탁한 발걸음에 담았다. 맞은편에서 훈련을 마치고 내려오던 다른 소대의 인원들은 자신들이 해냈다는 뿌듯함, 자신감, 안도 따위의 감정을 발걸음에 담아 경쾌하게 언덕을 내려갔다.

내 손에는 이미 나도 모르게 수류탄이 수차례 내던져진 호수의 물처럼 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손을 군복에 슥슥 닦아내며 순번을 기다리다가 들려온 소리,


"168번 훈련병 앞으로!!" (대한민국 훈련병은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렸다)


꽤나 빠르게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내 긴장감은 땀으로 바뀌어 내 손을 더욱 흥건하게 했다.


"168번 훈련병!! 수류탄 이상 무!!"

"안전클립 제거, 안전핀 뽑아!!"


 수류탄을 던지기 위한 육체적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이제 오른손에 쥐어진 묵직하고 검은 수류탄을 눈앞에 놓인 호수 구덩이에 던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수류탄을 쥔 손바닥에서 분출되는 땀은 멈출 줄 몰랐다. 이 상황에서 다시 수류탄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놓기에는 이미 늦은 일. 힘껏 수류탄을 뿌리쳤다. 


'투두둑..'


정면을 바라본 나의 시야에는 땀에 흥건한 오른손만이 보일 뿐 저 멀리 멀어져 있어야 할 수류탄은 보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둔탁한 무엇인가가 내 군화에 부딪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발에 떨어진 것이 수류탄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 맞은편에 있던 교관은 내 손에 수류탄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직후 고개를 좌우, 위아래로 주억거리며 수류탄을 찾고 있었다. 교관이 수류탄을 발견하려 애쓰다가 드디어 내 발아래 굴러가는 수류탄을 찾아냈다. 나는 전날 배웠던, '수류탄을 잘 못 던졌을 때 대처방법' 그대로 뒤쪽 벽 뒤로 내 몸을 날려 웅크렸다. 교관은 땅에 떨어진 수류탄을 호수로 이어지는 낭떠러지 구멍으로 차냈다. 그러고는 곧바로 나를 따라 벽 뒤로 피한 뒤 나를 자신의 온몸으로 감쌌다. 수류탄은 그날 그 어떤 굉음보다도 가장 포악한 소리를 내뿜었다.

 수류탄의 안전핀이 뽑히고 터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 3초. 즉 수류탄이 내 미끈거리는 손에서 탈출해 내 발아래로 굴러 떨어진 순간부터, 나와 교관이 벽 뒤로 숨을 때까지 그 모든 과정이 이뤄진 시간이 단 3초였다. 이 찰나의 시간 3초 동안,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배회하고 있었다. 




남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후 나는 꽤나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살았다'라는 안도감보다는 '내가 정말 잘 피했구나'라는 나름의 뿌듯함이 몰려왔다. 남들은 그날 고된 훈련을 밤늦게까지 견뎌야 했지만, 나의 사고 덕분에 그날 하루는 따뜻한 구들방에서 푹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사건 다음날부터 나는 다시 평범한 훈련병이 되어 있었다.

 제대 후에 이 날의 사고를 지인들에게 자주 심심풀이로 얘기하곤 했다. 삶에 대한 소중함? 인생 2회 차? 남들은 나의 사고를 그렇게 정의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물론이지, 나는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어'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그날의 사건은 안주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에게 이 날의 사건이 보다 더 선명하고 소중하게 그리고 두렵게 다가온 것은 꽤나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도심에서의 삶에 부대끼게 되면서, 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여러 형태의 위협을 지속적으로 마주해야 했다. 내 몸을 갈기갈기 파편 내어 처참한 죽음을 겪게 할 수 있었던 그날의 수류탄처럼 내 육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위협은 아닐지라도, 내 정신과 일상을 파고들며 끔찍한 굉음을 내는 위협은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 위협들에 무너져보기도, 견뎌내 보기도, 정면으로 맞받아치기도 해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마감한다'라는 선택지는 단연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모든 걸 포기하고 주저앉아 삶을 마감하고 싶을 만큼의 위협을 아직 겪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하여 30대 중후반의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 그리고 이 생존의 기초에는, 그날, 생을 마감해야 할 수도 있던 그날의 사건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나는 다한증이라는 예측 가능한 리스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싶었다. 그 도전이 나의 생명을 위협할 확률이 꽤나 높음에도 불구하고 도전했다. 그 도전의 결과가 참담할 뻔했지만, 3초라는 찰나 동안에 벽 뒤로 나도 모르게 몸을 피함으로써 생존의 본능을 발현시켰다. 내 본능은 나의 목숨을 귀중하게 여기고 있던 것이었다. 한마디로, 내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도피 반응'의 잠재력이 깨어난 것이다.



 물론, 사건 직후에는 이런 나의 잠재력을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내 삶을 가볍고 경솔하게 대했다. 사회라는 전쟁터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된 시점부터, 이 날의 사건으로 발현된 '투쟁-도피 반응'을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적재적소에 발현하면서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있었다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시야가 성숙해지는 그 시작점이 바로 이 날의 사건인 것이다.

 우리 주변의 위협은 보통은 예측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위협을 마주한다는 것은 도전적인 행위이고, 도전은 자신의 약함, 부족함을 알면서도 마땅히 해내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협이 있고, 그 위협을 대하는 자신만의 자세가 있다. 그리고 그 자세에는 투쟁-도피 반응이라는 자신만의 잠재력이 숨겨져 있다. 복잡하고 힘든, 때론 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한 멋진 기능이다. 

 조금은 무모할지라도, 조금은 위험하더라도 그 행위가 마땅히 나의 투쟁-도피 반응을 이끌어내 다가올 다른 위협을 견디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포텐을 터트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 행동에 임하는 자기 자신에게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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