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9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496일 차
일주일 정도 서울을 벗어났다. 비행기로 다섯 시간, 또 국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그리고 다시 차로 한 시간을 달려 말레이시아의 소도시 셈 포르나에 다다른다. 그곳에 도착해 다시 1시간을 배로 달리면 절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푸른 바다를 눈앞에 마주할 수 있다. 그 속으로 몸을 내던지면 태어나 처음 보는 산호들과 영화에서만 보던 열대어들, 그리고 책상 크기만 한 거북이들이 자유로이 영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셈 포르나, 그곳은 바다라는 대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내 온몸을 온전히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지구 그 자체였다.
그곳에는 바자우족이 살고 있었다. '바다 집시'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바다를 초원처럼 드나드는 해양 유목민이다. 물 위에 지어진 가옥은 위태로워 보여도 그들의 안락한 침실이다. 바다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들은 어업으로 유일하게 삶을 이어가지만, 그렇다고 딱히 모터 달린 낚싯배가 있다거나 촘촘한 그물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몸과 나무로 된 작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물속에서 나고 자란 듯, 땅 위보다 바닷속이 더 편한 듯,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잠수를 할 줄 안다. 그들이 바다라는 대자연의 양수 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바다라는 생명과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 듯한 환상에 젖는다. 바다는 그들의 생계이자 삶의 터전이었으며, 놀이터였다.
갓난아이들은 마땅한 옷이 없어서 벌거벗도 다녔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따스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이 언제나 함께했다. 나무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작은 배는 조금씩 물이 차 위태로워 보여도, 그들은 언제든 바닷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태풍이 불면 형체조차도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집도, 바다의 보배로움 속에서 굳건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얼굴에 번민이 끼어들 틈이 없음이, 나의 두 눈을 뜬금없게 붉은빛에 여물게 했다.
도심에서 쌓여온 퇴적물을 푸른 바다에 씻겨 보내려, 나는 수 시간을 달려와야만 했다. 그래야만 씻겨 없어질 것이라 믿었다. 내 두 발끝을 부단히 움켜쥐고 있던 일상 속 노폐물은 이곳 셈 포르나의 푸른 대자연에 녹아 없어졌지만, 결국엔 이 곳이 나의 일상은 아님에 아쉬움이 맴도는 것은, 이 곳을 찾은 모든 여행자들의 마음이리라.
하나 반대로, 우리가 나날이 부딪히고 부대끼는 현생을 도피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마주해야 했는데, 바자우족의 경이로운 일상 덕분이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주어진 것 안에서 삶을 영위하며 대자연이 건네주는 공생의 삶을 착실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만끽하는 그들의 삶은 도심 속에서 애처롭고 위태롭게 삶의 경계를 오가던 내 과거의 번뇌를 왜소하게 만들어 주었다.
수십만원의 경비를 지불해야만 겨우 빌딜숲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 태고부터 온전한 삶을 고스란히 체화하는 그들의 삶. 아마 그들은 나보다 분명 '행복'의 진심에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