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2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462일째
퇴사한 지 여전히 한 달이 채 안 됐다. 꽤 시간이 많이 흐른 줄 알았는데 아직 20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동안 적응해 온 시간의 왜곡이 꽤 강렬하다. 자유를 탐닉하던 첫 백수 경험 20일, 서서히 다가올 현실들이 꿈틀거린다.
안대현 님, 이번 달 카드 결제 금액은, x,000,000원입니다.
안대현 님, 이번 달 전세자금 대출 이자 납입일입니다.
안대현 님, 이번 달 관리비 입금 부탁드립니다.
안대현 님, 비상금 통장 이자 납입일이 도래 했습니다.
일할 때는 쳐다도 보지 않았던 문자들을 꽤 자세하게 읽고, 우편함에 묵혀두던 고지서들은 발견하자마자 얼른 꺼낸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즉시 통장 잔고를 들춰 필요한 돈을 납입한다. 아쉬움이 없어야 한다. 하루 이틀 넘기는 건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는 행위다. 더 이상 내 돈이 아니다. 보내주자.
잠깐의 뜸 들임을 끝내면 다음 달의 소비를 미리 걱정하는 마음이 떠오른다.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를 대가로 나는 이 불안함과 싸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내 자신의 걱정을 달래줘야 할 마음을 품어야 한다. 마음을 달래고 곧바로 현실을 해체하기로 한다. 한 달간 내가 지출한 비용을 확인한다. 지난달 영상 편집을 위해 통 크게 투자한 6개월 할부로 산 노트북의 비용을 제하더라도 이번 달 소비는 나름의 선방이다. 하지만 더 나 자신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나는 다가올 나의 안온한 목적을 위해서 석 달간은 온전히 내 글과 유튜브 영상 편집에 시간을 할애하기로 다짐했다. 3개월의 임시적 자유에는 확실히 그에 상응하는 통제와 억제가 필요하다. 지금 이대로의 한 달간의 페이스라면 3개월은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하나, 한 달을 돌이켜보니 좀 더 농후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숙성의 시간으로 3개월은 조금 부족한 감이 든다. 적어도 반 년, 기회가 된다면 일 년까지도 이 삶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돈을 굴리거나 씀씀이를 관리하는데 굉장히 연약하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늘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핑계 같은 이유. 하지만 내가 돈을 쓰는 구멍은 명확했고, 나름 거창한 포부에 비해서, 야식, 배달음식, 술 등, 상당히 옹졸한 씀씀이였다. 그 씀씀이가 하루, 이틀, 그리고 열흘하고도 한 달이 쌓이여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내 씀씀이에 한숨을 푹 쉬어내는 내 모습이, 이젠 싫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자유를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기회비용이 든다는 것을 잘 깨달을 수 있는 한 달이었던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는 것. 나는 자유를 탐하기 위해 탐욕을 버리는 중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나를 억제하는 중이다. 그동안 해오던 것들을 절제한다. 분명 지칠 일이다. 35년간 해온 일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월 45만 원 근처의 알바비를 받고, 월세 30만원의 고시원에서 끼니와 잠을 해결했던, 패기 어린 나의 모습을. 월급 200만 원이 채 안 되는 형편에서도 원룸 안에서 행복을 만끽하던 나의 모습을.
돈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그저 무의미한 소비와 도파민 중독으로만 채워간다면, 그것만큼 자신을 연민해야 하는 좌절된 상황을 견딜 힘은 없다.
내가 나에게 선사한 이 3개월이, 반 년이 될지, 일 년이 될지, 그것은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음을 되뇌이며,
나는 오늘도 하루를 하루답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