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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Oct 16. 2024

관계를 끈끈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24.10.16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456일째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설고 어색하며 불편하기도 한 첫 만남의 공명. 누가 더 관계의 모호함을 잘 정립할 수 있을 것인가는, 누가 더 이 관계에 먼저 흥미를 보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일. 어떤 이에게 흥미를 느끼는지 매우 분명한 선이 존재하는 나는, 보통 내가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어떤 이는 나의 묘하고 활발한 기운에 이끌렸으나 쉬이 말을 걸지 못하는 성격이라 내가 먼저 다가갔다. 또 다른 어떤 이는, 내가 그의 신선하고 희귀한 아우라에 이끌려 먼저 말을 건넸다.



 너무나 반대되는 시작이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씩 조심스럽게 서로의 성향과 취미, 살아온 느낌들을 보이는 말투와 모습으로 알아갔다. 그러다 보면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한다. 책, 커피, 밥, 드라이브,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 계속해서 서로를 알아간다. 하지만, 정작 속에 있는 진솔한 얘기를 꺼내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나름의 충분한 시간과 상호 이해관계가 적절히 섞여야만 관계라는 것이 영글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보통은 그전 단계로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간다. 내가 그들에게 느낀 것들, 그들이 나에게 느낀 것들을 하나둘씩 꺼내면서, 자신이 상대방에게 느끼는 온갖 형용사를 내뱉는다.

 이후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육감으로, 굳이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속 진솔한 무언가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유추하고, 추측한다. 여기까지는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감에 있어서 너무나 정상적이고 평탄한 흐름이라 말할 수 있다. 호기심에서 호감, 그리고 더 깊은 탐구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보이지 않던 선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간혹 우리는 그 선을 꽤나 과감하게 그리고 경우 없게 넘어가려 하다 보니 관계의 파열음이 생기기 시작할 뿐.



 내가 세운 그들에 대한 가설이, 단 몇 번만의 만남으로 확실한 사실로 귀결되어, 사람을 판단하고 확정하기에 이른다. 이 단계가 제일 어렵다. 아직 상대방은 자신에 대한 진심과 속 깊은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우린 너무도 쉽게 결론짓는다.



'그는 성격이 쾌활하지만 너무 조급하군. 나랑 어울리지 않겠어.'

'얘는 다 좋은데 너무 조용하고 말이 없어, 나랑은 어울리지 않아.'

'외모도 세련되고 매력 있네, 나랑 잘 어울리겠어 아주.'



 관계의 초입에서부터 쌓아둔 추측들은 사람 각자마다의 속도에 맞춰 확신으로 변한다. 그 확신은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우리의 뇌에 못 박힌다. 나 또한 무의식 중에 상대방을 판단하곤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이 확실시되어 거리를 더 좁힐지, 아니면 더 멀리할지 재단하기 시작한다. 어제의 내가 그랬다. 그들이 지닌 고유한 행동과 성향의 일각만을 보았을 뿐인데, 그들은 나와 결이 다르다는 확신, 그들과 가까워지면 트러블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했다. 서로는 자신의 어떠한 탐구도 허락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일인데,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행한 아주 적은 몇 가지 언행들로 속단하는 것은 아닐지. 온갖 잡념에 빠져 내 감정을 소비하는데 꼬박 하루를 보낸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남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공통적인 성격, 공통 관심사와 같은 교집합에 집중한다. 시간이 쌓이면서 교집합 안의 존재들이 하나둘씩 추가가 되면, 그 관계의 유착은 끈끈해지진다. 하지만, 교집합이 커져가는 속도가 줄어들수록 관계의 교착은 유착보다 훨씬 더 빨리 진행된다.

 어쩌면, 우리가 관계를 정립하고 정렬함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은 교집합뿐만이 아닐지 모른다. 완전한 관계란, 서로의 교집합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여집합도 끌어안을 수 있는 관계 아닐까. 


 

 처음엔 어색함과 경계심이라는 고치로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어서, 서로의 본모습과 진심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냥, 겉을 마주하면서 풍기는 향기와 껍데기의 촉감, 눈으로 보이는 질감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전부이다. 단단하던 고치가 조금씩 말랑거리기 시작하고 한 꺼풀씩 벗겨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속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 난 갓난아기처럼 상대방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때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제 아무리 고치 속을 탐닉하고 싶더라도, 인내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고치가 알아서 허물어지도록, 그래서 그 속살이 알아서 우리의 시야에 보이도록.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교집합이 아닌 여집합을 포용하는 일일 것이리라. 



근례, 또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서 시작한 관계들이 조금씩 교착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 지금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은 교집합을 더 확장시키려 그들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탐구하고 섣부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리라. 나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지니고 있는 그 미지의 무언가를 천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결국엔 그 여집합마저도 그 사람의 매력이라는 것을 알고 진득하게 끈끈해지려 노력하는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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