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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Oct 12. 2024

트라우마는 여전하고, 우리에 의해 훼손되는 중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을 기뻐하는 작은 속삭임

24.10.12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452일째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

-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수상 이유 -



부끄럽지만, 아직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았다. 이번 기회로 접해보겠노라며 다짐을 마음으로 속삭여본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이 어떤 세계관을 다루는지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이데올로기 안에 뒤섞였던 인물은 아니었어도, 그녀는 적어도 그 역사를 직시하고, 탐구하고, 연민하고, 진심으로 슬퍼했을 듯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글로서 겸허히 그리고 힘주어 토해냈음이 분명하기에 위와 같은 수상 이유로서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되었으리라.



 목요일 밤 수상 소식이 온 곳에서 들려왔다. 나는 한창 독서 모임 중이었고 누군가가 그 소식을 알려오자 이유 모를 소름이 순간 스쳤다. 각종 언론은 진행하던 보도를 멈추고 수상 소식을 전했고, 그녀의 책은 순식간에 몇 십 만부가 팔렸다. 국회에서도 국감을 멈추고 다 같이 박수 갈채를 하는, 매우 비현실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sns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게시글과 피드에 축하의 말들이 올라왔다. 그것이 비단 자신의 계정 조회수를 올리려는 상업적인 용도로서의 행위가 다분히 느껴질지라도, 응당 그럴 만한 일이었다.



 그 다음날인 어제,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그리고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따뜻한 광풍이 잠시 소강상태인 상황에서, 민낮을 드러낸 글과 말들이 서서히 광풍 속 잔먼지와 각종 오물처럼 세상 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죄다 역사 왜곡이다.', '명단 늘어놓고 선풍기 돌렸을 거다.', '문프셀러' 부터, 그녀를 향한 인신공격까지, 그 밖에도 원색적인 비난은 누군가의 품 안에서 격렬히 맴돌고 있을 일이다.



 나는 감히, 우리나라가 겪은 격동의 수십 년에 대해서 당당히 내 의견을 펼칠 만큼 역사의 본질이나 사실을 명확하게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매한 나일지라도 분명히 느껴지는 하나는 있다. 우리가 모두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며, 누군가는 치유보다는 훼손, 멸시, 그리고 무시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여실히 느낀다. 

 누가 이런 극단의 분열과 대립을 초래한 것일까? 이 질문 또한 내가 감히 함부로 답하지 못한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또는 국소적인 모임 안에서는 '색깔과 진영을 떠나 의로움과 이로움 그 어딘가의 경계에서 이로움을 택한 몇몇 기득권자들의 손에서 시작된 분열'이라 차분히 얘기할 수 있지만, 이 발언 또한 오만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 나의 탐구 영역의 초입에 있는 한강이라는 작가, 한 인간은, 끝까지 고뇌하고 괴로워했고, 그것들을 한데 모아 글로서 용기를 분출했을 것이라는 생각. 위대한 수상자임을 떠나서 그녀의 용기에 감히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속삭여본다.


그녀가 내디딘 작은 한 걸음으로 시작한 이 큰 족적이, 부디 우리의 트라우마를 직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상처를 서로 보듬어 주는 계기가 되기를. 시작점이 어딘지 불분명한 분열의 시간을 서서히 서로가 봉합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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