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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신춘문예 응모

by Life teller A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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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독감의 위협에 맞서 링거와 주사 그리고 약으로 투항하고 있을 때, 올해 목표로 두었던 신춘문예에 응모를 하기 위한 마지막 움직임을 취했다. 독감약의 기운에 취해 빌빌 대던 몸을 겨우 스스로 부축하고 노트북을 켜서 응모를 위한 작품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수정하고 느꼈다. 허나 독감으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우체국으로 가기엔 너무나 많은 심적 난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 신춘문예는 내년에도 있고 내후년에도 있고 10년 후에도 있으니까. 일단은 좀 쉬자'라는 생각이 순간 들어 다시 따뜻한 이불속으로 몸을 뉘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 소중한 글들이 적인 종이를 들고 집 근처 우체국을 향했다.


날씨도 내 편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내 몸속을 파고드는 바람, 바람에 휘날리며 내 몸 곳곳에 추적이는 빗방울. 우체국으로 내딛는 한 발자국이 너무나 무거워 평소라면 5분도 안 걸릴 거리였지만 거의 20분이 걸린 듯하다. 가까스로 도착한 우체국에는 각자만의 사연을 담은 소포와 편지를 보내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일 낮이었지만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 줄이야. 직원분에게 서류 봉투 두 개를 받고 붉은색 사인펜을 빌렸다. 정신없는 내 몸과 마음으로 인해 혹여나 응모를 잘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폰에 캡처해 놓은 응모 방법을 한 글자 한 글자 집중해서 읽었다.


붉은색 글씨로 "신춘문예 응모작"을 적는 순간, 붉게 물든 글씨의 온도만큼이나 내 몸속은 순간 뜨거워졌다. 굳이 내 글을 고쳐 쓸 필요도 없이 이 작은 행동 하나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이, 독감으로 잠식되어 멍한 내 몸과 마음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내 글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 평소보다 더 올곧게 누런 서류 봉투에 써졌다. 그저 응모일 뿐인지만, 나에게는 글쟁이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노란색 병아리 옷을 겨우 벗을 수 있어 좋았던, 3월 초 봄 내음 맡으며 상기된 얼굴로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천진난만한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저 인생에 한 점일 수 있는 초등학교 입학날이었을 텐데 그리도 설레던 기억을 나는 아직도 잊히지 못하듯, 이 날의 나는 생애 두 번째 천진난만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있었다.


그저 응모일 뿐이다. 내가 종이에 눌러 담은 글은 곧 신문사에 도착할 수많은 글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류 봉투에 테이프를 뜯어 봉투 입구를 동봉하고 우체국 직원에게 두 개의 봉투를 건네는 순간만큼은 그 수많은 글자들의 평범함과는 분명 다른 평범함일 것이리라.


우체국에서의 모든 행위를 마무리하자마자 다시 독감 기운은 내 온몸과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그와 함께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올해의 신춘문예 응모의 순간에 대한 아쉬움, 일말의 희망과 기대가 동시에 내 머리를 채웠다. 아마 나는 내년에도 신춘문예에 응모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여러 문예지의 공모전에도 응모를 할 것이다. 또한 자체적으로 출판사에 투고도 해보겠지. 하지만 그 어떤 행위들도 이 날의 붉은 글씨를 적는 순간보다 더한 설렘을 가져다줄 것이라 감히 예측할 수가 없을 듯하다.


다만, 한 가지 나에게 바란다면 내가 앞으로 살 인생을 이 날의 순간과 같이 살기를 바란다. 적당한 고됨 때문에 내 의지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비록 느릴지라도 묵묵히 걷길 바란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걸음이 아니라 내가 느낄 설렘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아쉬움이 느껴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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