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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Aug 27. 2024

난 나약한 위선자였다

연봉 1억을 받으며 자신을 과신하던 시절. 권고사직으로 근무를 반강제 종료 당하고 나는 한동안 방황했다. 몇 달간 무기력에 잠식 당해서 경제적 활동은 뒤로 한 채 통장에 남은 돈을 갉아 먹으며 잠과 밥만 축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쇼파에서 몸을 일으킨 후, 그동안 내 몸 곳곳에 껴 있던 묵은 때를 벗겨내기 위한 첫 걸음으로 각종 채용공고를 살펴봤다. 분명 지원하면 면접을 볼 수도 있고 좋은 결과고 기대해볼 수 있는 공고들이 꽤나 있었으나 어느 하나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멍하니 노트북 모니터만 바라보며 하릴없이 시간만 축내다가 하루가 지나가기를 수일이 반복됐다. 난 내가 권고사직 당했다는 것을 쉬이 인정하지 못했나보다. 연봉이 무려 1억이었던 내 삶에서 다시 내려와야만 하는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나보다. 5년 간 한 회사에서만 고인물처럼 묵혀있던 내가 다른 곳으로 적을 옮긴다는 일이 두려웠음이 자명하다. 내가 그동안 쌓아올린 경험치는 그저 그 세계관 안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제한된 능력치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나의 머릿속을 잠식시켰다. 나의 나약함은 매우 다양한 갈래로 그 형태가 정해져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고 어느 것 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방치해두고 있는 내게 다음 밥벌이를 고민하는 일이란, 쉬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며칠간의 장고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다시는 회사원이 되지 않으리란 결정이었다. 아니, 냉정하게 따지자면 회사원이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렵기에 나온 도피성 결정이라고 지금와서는 자신있게 말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렇게 헤드헌터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내 삶을 회피함으로서 기본급 0원,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했다. 나약함에 근간한 회피성 선택치고는 불행 중 다행인지, 내가 어떤 만족감을 어디서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헤드헌터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독립적이면서도 자율적인 업무 환경이 선사하는 자유로움에 취해 일을 방관할 때면 어김없이 경제적 압박감이 다가오는 것은 새롭게 체감한 현실이긴 했으나, 나에게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자유감이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감이 꽤나 크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또렷히 얻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회피성으로 택한 직업이었기에 일에 대한 타성에 쉽게 젖어 들고 회의감이 밀려오는 날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왔다. 무수한 사람들의 이력서를 보고 기계적으로 메세지를 보내는 일이란 여간 나에게는 고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뭔가 새로운 포맷을 시도해보는 것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나에게는 꽤나 고독하고 불안한 일이었다.

 권고사직 이후 약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삶과 세상을 회피한 프리랜서에게 세상의 냉정함은 이루 말할 길이 없었이 차디 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에서 오는 압박감은 꽤나 가벼웠다. 하루에도 수차례 발생하는 돌발적인 사건과 사고들,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일만큼 힘든 팀원들 눈치 살피기, 어르고 달래며 밀고 당기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감정 소비를 해야했던 거래처 사장님과의 대면. 나를 걱정과 불안에 찌들게 했던 과거의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 증거로 스트레스가 극심하면 항상 붉게 차올랐던 두피의 염증들이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회피성으로 선택한 직업이었는데 적당히 돈도 벌고 스트레스는 그 전보다 훨씬 덜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나 다름 없었다. 내가 버텨내야만 하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돈의 무게였다.  투쟁의 나날을 보상해주는 대가로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은 통장 내역에서 온데 간데 사라지고, 통장 속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어갈 때마다, 느껴보지 못했던 돈의 무게감을 버텨내는 일은 꽤나 내 가슴을 졸이게 하는 생경한 불안이었다.

 주기성 없이 불쑥 나타났다 훅 하고 사라지는 통장 잔고의 변덕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래저래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다. 기본급이 0원이었고 어디까지나 건by건으로 성과를 내야만 돈이 들어오던 헤드헌터의 구조는 내가 각오했던 것이었으며, 시작은 쉽지 않았으나 나름 수익이 상승곡선을 그릴때도 있었기에 내가 그동안 습관들여온 지출의 패턴을 바꾸고 적응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돈이 들어오기 직전이었다가도 갑작스런 상황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경우도 더러 겪었지만 그 또한 버틸만 했다. 내가 희망하던 시간적, 공간적 자유감을 추구하기 위한 기회비용이라 생각했다.




허나, 나에게 있어서 헤드헌터라는 직업이 과연 나의 삶에 있어서 당위성이 얼마나 되는지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 프리렌서의 삶은 방황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뚜렷한 목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 취향을 고려한 것도 아니었으며, 사명감이나 절실함이 담긴 일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일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했고, 1년을 넘겨서야 그 의구심이 늦게 차오른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 시간과 공간적 자유감에 꽤나 심취해서 그랬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업무의 성취감은 내 통장 속 잔금만큼이나 급격하게 텐션이 떨어졌다. 업무 시간도 자꾸만 줄어들었다. 일을 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만큼 업무 시간이 하루를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줄어든 23년 여름 어느 날, 내 직업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극에 달하고, 성사 직전이었던 매우 큰 계약건이 나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수포로 돌아가면서 내 통장은 가벼워질대로 가벼워지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만 했던 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밥과 술을 축내고 잠만 자며 세상의 산소 일부를 무단으로 들이쉬며 내 몸 속 이산화탄소를 아무 허락도 없이 세상에 내뿜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 생각하며 나를 비관하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최대 한도인 300만원이라는 돈이 내 수중에 들어오자, 이걸로 근근히 몇 달은 버틸 수 있다는 말을 내뱉으며 배달 음식을 시키는 나태한 안도감에 중독된 위선자라고나 할까.



위선자.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를 지켜봐준 사람들에게 위선자였을 뿐이다. 권고사직 직후 지칠대로 지친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용기를 붓돋아주려 노력하던  사랑해주던 이들. 나는 그들에게 나는 괜찮아지고 있다는 속 빈 말만 난사해댔다. 헤드헌터는 내가 그저 회사원이 되기 싫어 선택한 회피성 취업이었지만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내 선택이 회피성이 농후했음을 티 내지 않았다. 나약해보일까봐 티내지 못했던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때, 이 방황의 시기에 약의 힘을 빌렸어야 했을수도 있다. 정상인 척 하는 나의 가면을 벗겨내고 당당히 과거를 마주하고 내 자신을 연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약을 택했더라면, 아마도 나 자신의 나약함을 좀 더 빨리 다스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지난 나의 과오를 탓하고 후회하는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의 과거를 면밀히 살펴보고 냉정하게 그 당시의 내 상황을 돌이켜 보기 위함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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