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워딩이 꽤나 자극적인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내가 약을 복용 중인 것도 사실이다. 나는 내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를 복용 중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를 방문해 봤고,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아보았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 설문지를 작성해 봤고,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해 봤다.
의사는 나의 증상을 과거에 내가 마주한 수치스러움, 모욕감, 스트레스를 야기했던 일련의 사건과 인물들을 현재와 분리시키지 못하고 연결 지으려 하는 데서 비롯한 불안함이라고 진단했다. 내가 그의 앞에서 뭐라고 구구절절 말을 해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이만큼이나 나약하게 된 원인이 과거에서 온 것이라면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이 놈의 스타트업 때의 시절일 것이 분명했다.
연봉 1억이던 시절. 나는 속으로는 허영, 과신, 탐욕, 질투, 나태, 이기심을 가득 채웠고. 밖으로는 굳이 만들어도 되지 않을 적을 만들며 자꾸만 나를 혼자 방치했다. 나 자신을 방치해 둔 나의 말로는 너무나 처참했다. 권고사직. 토사구팽 당했다고 생각한 나는 퇴사 직후 철저히 방황하고, 무기력에 휩싸였다.
그러나,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했고,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젊은이였기에 얼른 헤쳐 나오기는 해야 했다. 나의 실패를 뒤늦게 인지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 실패를 인정한다는 행위가 명동 한 복판에서 나체로 거니는 일만큼이나 수치스럽고 추태 같아 보이는 행위임을 이때 처음 알았다. 어렵사리 내 실패를 인정하고 나서 본연의 나를 탐색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여전히 탐색기를 돌리고 있다). 퇴사 후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연스럽게 다가온 마음 맞는 일들과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유와 안정을 되찾았다. 아니,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어떤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철저하게 무너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너질 것도 없었다. 나의 과거를 인정하고 나 다움을 찾아가고 있음에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나약했고, 나약한 몸과 마음으로 방황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과거 내 무기력했던 그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던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나약함의 원인이 내 과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약의 힘이라도 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나 스스로 나를 주어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약효는 나에게 엄습하는 불안과 우울을 일시적으로 가려주기만 할 뿐임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내 나약함을 온전히 씻겨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행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약을 처음 복용하고, 서서히 조금씩 약 복용량을 줄이고, 주기적인 복용은 하지 않고 갑작스러운 불안 증세가 찾아올 때만 상비약처럼 복용하게 된 지금까지의 기간이 약 두 달이다. 꽤나 짧은 시간에 꽤나 복용량을 많이 줄였으나, 나의 나약함을 온전히 씻겨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이상의 무언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나의 나약함은 어느샌가 내 심장에 다가와 소리 없이 비수를 꽃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이렇게 된 일, 나는 또 방황을 마주할 것이고 그때마나 나약한 존재로서 시간을 감당해 내야 할 것이니, 적어도 그때가 도래했을 때 나의 교감신경을 교란시키는 약의 힘을 빌리는 행위를 조금이나마 멀리 해보자는 의지를 담아보고 싶었다.
이왕 방황할 거라면, 나 자신을 돌보고 나약함 또한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토닥여주는, 건강한 방황을 하고 싶었다.
해서, 이 책에서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한 번 써 내려가보려 한다.
하나는 약을 복용하게 된 직접적이고 표면적인 사건들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나서부터 난생처음 겪어본 약의 효과,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약에서 벗어나고 있는 지금까지, 약 세 달간의 이야기. 이 사건들을 먼저 복기함으로써 내 겉에 난 멍들을 어루만지려고 한다.
겉에 보이는 멍을 어루만져주었다면 본격적으로 멍이 생기게 된 원흉, 과거의 사건들을 끄집어낼 것이다. 의사가 나에게 말해준 대로, 나의 나약함을 초래하는 불안의 원인이 내 과거에서 비롯되었다면, 너무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워도 응당 꺼내어 나의 나약함을 다스려야 함이 마땅하다.
이렇게 나의 가까운 과거과 먼 과거의 사건들을 글로서 내뱉는 행위가 내가 나의 나약함을 토닥거리는 데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 꽤나 수고스러운 지금의 나에게 꽤나 도움이 되는 행위가 될 것 같기는 하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 특히나 정신의학과 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두렵고 낯설기가만 하며 수치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이들이나, 이미 정신과 약을 먹고 있지만 쉬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되며 위로가 되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