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 복용의 직접적인 사건은 잠시 뒤로 미루고, 내가 정신과를 난생처음 방문한 건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보려 한다. 정신적인 힘겨움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약에 일정 부분 기대 보자는 나약하고도 의지적인 결심을 어렵사리 했다. 사건이 있은 날 밤부터 약 일주일 밤을 매번 이불속에서 몸부림쳤다. 약 3년 전부터 길게는 7년 전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학창 시절까지. (나는 바라지 않았지만) 내가 겪었던 괴로운 사건들이 내 머릿속 허름하고 먼지 낀 필름통에서 꺼내어져 머릿속에서 영사되기를 반복했다.
"하............... 씨발.........."
이불속에서 뛰쳐나와 연거푸 피어댄 담배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진정되기는커녕 텁텁한 새벽 공기를 내지르며 피어오른 짙은 담배연기는 뿌연 스크린이 되어 영사기 속 필름을 더욱 또렷이 반사시킬 뿐이었다.
'그래, 담배를 피우면 더 괴로워질 뿐이야. 이참에 끊자'
괴로움으로 가빠지는 내 호흡에 담배가 도움이 될 리 만무했다. 조금이라도 극약처방이 되겠지 하는 바람으로 몇 개비 남은 담뱃갑 속 답배를 모조리 부러뜨리고 버렸다. 불행히도,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수년간 내 온몸 곳곳을 침투해 온 니코틴은 내게 불어닥친 불안을 무뎌지게 할 유일한 수단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속삭임을 끊임없이 귀에 흘려댔다. 그 결과 니코틴에 굴종해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 갑을 샀다. 한두 개비를 피고 나서 다시금 가빠지는 호흡에 또다시 담뱃갑의 담배를 부러뜨리고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담배를 사고, 피고, 버리기를 하루에도 수차례. 혹시나 부러뜨린 담배 중에 아직 덜 부러졌거나 부러뜨리지 못한 녀석이 있을까 싶어 쓰레기통을 뒤지던 나였다.
지금의 비생산적이고 비정상적인 내 행동에도, 차마 정신과 상담을 받는 행위가 나를 부정하는 행위 같아서 발만 동동 구르던 나는 의사라도 된 냥 내 증상의 자가 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만일 정신과를 간다면 병명이 뭘까? 우울증, 조울증, 그냥 불안? 이런 병명도 있나.... ADHD?"
구글링을 넘어서 챗GPT에게 상담을 요청하며, 나의 병명을 진단하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어떤 일 때문에 너무 불안해. 숨을 잘 못 쉬는 때가 있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일에 집중이 잘 안돼.. 나 지금 정신병에 걸린 건 아닐까?"
"이런, 아마도 이건 ADHD 같네요! 가까운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다 하다 컴퓨터에게 내 병의 진단을 부탁하는 때가 오다니, 끔찍하다. 여하튼 간, 나는 GPT가 내려준 진단인 성인 ADHD를 잠정적으로 나의 정식 병명으로 규정을 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꾸역꾸역 매일을 버텼다.
"크헉, 크헉...!"
어느 날 아침. 이제 더 이상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불안한 아침. 평소 흘려본 적 없던 식은땀이 이불에 끈적하게 번진 주말 아침. 어떻게든 불안한 마음을 지워보려고 샤워도 해보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기도 해 보고, 유튜브 쇼츠만 하염없이 문질러대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주말 점심 부랴부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동네 정신과를 찾았다. 진료 시간이 약 30분 정도 남은 상황. 병원에는 간호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정신과를 방문한다는 것이 자신의 병약함을 인정하고 보통의 사람이 아닌 신분으로의 낙인이 찍히는 행위라고 평소에 생각하던 내가, 몸소 내 몸을 이끌고 정신과로 향하는 것에 몹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고집스러운 불쾌감을 따져가면서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진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주말 낮. 꽤나 친절하다는 네이버 리뷰를 비웃기라도 하듯,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될 무렵 찾아온 나를 간호사들이 달갑게 마지할 일은 없었다.
"XXX 씨"
굉장히 담담한 의사의 목소리. 이미 나 같은 사람은 수천 명은 진료를 봤다는 듯, 느긋한 의사의 몸짓. 내가 방을 들어서도 계속해서 진료차트만을 바라보는 그. 오히려 챗GPT와의 대화가 더 인간스럽게 느껴졌다면 믿겠는가? AI보다도 더 차가운 의사의 무관심으로 몇 초 간의 정적이 흐르고, 그는 침묵보다도 더욱 고요한 목소리로 나에게 여러 질문을 차분히 이어갔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어요?"
"숨이 잘 안 쉬어집니다. 불안하고요, 가슴의 두근거림이 심합니다. 일에 집중이 잘 안 되고 정신이 너무 산만해져요........ 이런 증상이 뭔가 ADHD 같아서요."
(차마 챗GPT가 진단해 준 것이라고는 말하진 못했다.)
'서석, 서석, 서석'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일을 하다가..........."
'서석, 서석, 서석'
"부모님 하고 관계는 어떠신가요?"
"지금 부모님은 이혼을.............."
'서석, 서석, 서석'
짧은 질문 한 번, 긴 대답 한 번, 그리고 그 사이 들려오는 펜으로 끄적대는 소리 한 번. 진료실 안의 세 가지 소리는 한데 섞여 더욱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XXX 씨는 과거에 본인이 겪었던 일들을 지금과 분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네요. ADHD보다는 과거를 분리하지 못하는 불안감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보입니다."
"일단 가볍게 항불안제를 드릴 테니까, 하루 세 번 고정적으로 복용하시고 증상이 찾아오면 그때도 바로 드세요. 그리고 설문지를 드릴 테니 작성하시고 일주일 뒤에 오시면 됩니다."
챗GPT와의 대화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거 같았던, 침묵보다 더욱 침묵 같았던 진료 시간이 끝났다.
한 참을 뜸 들여(어찌 보면 3~4년 전을 거슬러 전 직장을 퇴사하기 전부터) 이제야 겨우겨우 용기 내어, 아니 어쩌면 생명의 위기감을 느낀 탓에 본능적으로 들른 정신과. 뭔가 당장의 약효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뚝뚝한 의사와 무뚝뚝하게 질문 몇 개 주고받고 한 손엔 처방전, 다른 한 손엔 뭉툭한 설문지 하나만 쥔 내 꼴을 기대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영화에서 보던 안락한 소파는 아닐지라도, 친절함과 위로가 충만한 대화는 아닐지라도, 내가 절대로 진단할 수 없는 작금의 나의 모습을 적어도 인간의 온도정도로는 어루만져주길 바랐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알약 여러 개를 가둬놓은 약봉지가 아니라 나는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용기와 위로 한 움큼이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큰 욕심일 뿐이구나. 어쩌면 나는 너무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원래 정신의학과는 이런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리고 나처럼 자신의 병명을 물어볼 곳이 없어서 챗GPT에게 의지해 진단받고 있는 아무개가 있다면 속삭이듯 말해주고 싶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는 법. 후기를 믿지 말거라. 주말 오후엔 방문하지 말아라. 어쩌면 당신은 챗gpt에 기대어 당신의 고충을 털어놓는 자신의 모습이 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더욱 현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도 처방약을 복용하는 건 나름의 임시방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래, 난생처음 정신과 약을 복용한 건에 대해 다음장에서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