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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May 23. 2024

서울과 작별하는 중입니다

15년 사귀었으니 이제 헤어질 때도 됐잖아?

내 나이 20살, 제주가 고향인 내가 여행이 아닌 이유로 본격적인 서울 살이를 위해 서울 땅을 밟았다(정확히 말하면 남양주에서 삼수를 했으니, 본격적 서울살이는 22살 때부터 군). 김포공항에 바퀴를 떨군 비행기의 문이 열리고 나서 맡은 서울의 냄새는 너무나 매쾌했다. 푸른 바다의 짠 내와 숲 속의 상쾌한 공기가 20년간 휘젓고 다니던 내 몸속에 처음 맡아보는 서울의 매쾌함은 자연스레 헛구역질을 유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울을 오고 싶어 했다. 갓 스무 살이 된 철없는 제주 촌놈에게 서울은 신세계였다. 먹자골목, 클럽, 놀이공원, 각종 문화생활이 즐비한 서울에 비해서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제주도는 한없이 좁고 답답한 작은 땅덩어리일 뿐이었다. 어떻게든 서울에 오고 싶었다. 하지만 수능이 유일한 서울의 등용문이라 생각했던 나에게는, 초라한 고3 수능 성적표가 눈앞에 있었고 그렇게 재수를 선택했다. 겨우겨우 1년을 버텨 서울이라는 정상으로 다가갔지만 내 성적의 걸음은 경기도라는 산중턱에 다다랐을 때 멈췄다. 부족한 내공을 쌓고 또 한 번 1년이란 시간을 버텨 겨우겨우 나는 서울이라는 정상에 깃발을 꽃았다.


 스무 살 초반에 시작한 서울에서의 삶, 그리고 지금 서울과 함께한 지 어언 15년이 넘어간다. 한평생 수십 년을 서울에서 살고 계신 어르신도 있는데 고작 15년을 살았다고 서울과 이별하겠다는 것이 호들갑으로 보일 수 있겠다. 또 한편으론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을 고하는 굉장히 뻔뻔하고 궁상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 책은 내 호들갑과 뻔뻔함 그리고 궁상맞음을 담고자 함은 아니니 오해는 말자.


내가 굳이 이 책을 서울과 '작별하는 중'이라고 한 이유는 따로 있다.


첫 째, 나는 서울과 작별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서 잘 살고 있다. 아직 전세대출 기간이 1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살고 싶지 않아도 1년은 더 살아야 한다. 헬스도 1년 치나 끊었다. 직장도 잘 다니고 있다. 정말로 서울을 떠나려 마음먹던 찰나 다가온 우연한 인연이 결국 지금의 내 회사의 대표님이 되었다. 여러 이유로 나는 서울과 당장 작별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두 번째 이유가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얘기다.

서울과의 작별을 결심한 작년 여름부터 서울이 애틋해지기 시작했다. 해외건 국내건 비행기건 기차건 버스건 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와본 사람은 이 기분 알 텐데. 짧은 기간의 여행을 마치고 숙소의 짐을 캐리어에 정리하고 두고 간 것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한번 둘어보는 순간부터 오장육부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느낌. 


- 아쉽다.


특히나 이 아쉬움은 해외여행의 마지막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더욱 짙어진다. 해외이기에, 이제 떠나면 가까운 미래에는 다시 오는 게 쉽지 않기에 공항 가는 길이 더욱 무겁다. 여행 내내 등한시했던 아스팔트 길, 오래된 벽돌과 거리의 흔한 간판들, 명소를 보느라 신경도 안 썼던 현지인들의 이목구비와 표정까지, 모든 것들이 아쉬워진다. (비행기가 한국 땅을 밟게 되면 아쉬움이 공허함과 허무함으로 바뀌기도 하는 암울한 기분까지 경험해 봤다면 나와 비슷한 분이겠지.)


작년 여름, 이제 진짜 서울에서의 삶을 마치고 내 고향 제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청계천을 바라본 순간, 15년간의 서울에서의 장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쉬운 마음이 내 몸 안을 짙게 채워갔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곰장어 노포집의 구수한 냄새가 아쉬워졌다. 있는 줄도 몰랐던 청계천 냇가의 오리들을 구경하는 게 이렇게도 신기할 일이라니!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대면 나는 '삐'소리는 제주에서는 들을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끼고, 서울의 탁한 공기를 붙잡는 누런 가로등 빛이 이렇게 애잔해 보인다는 것이 이렇게도 서글픈 일인지.


그날부터 나에게 서울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서울과 작별하는 중이다. 오늘 하루가 서울이라는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날인 듯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나는 아직 겁쟁이에다가 여전히 속세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성인들의 말을 실행하기엔 내공이 부족하다.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의 이 오늘이 서울에서의 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음에 서울을 온전히 느끼자는 것만큼은 투박하게나마 실행하고 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기분을 느끼자니 여태껏 살아온 서울과의 시간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마치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듯이, 그간 살아온 15년의 서울 그리고 앞으로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오늘의 서울을 이 책에 기록해두려 한다. 이렇게 매일을 서울과 작별하다 보면, 정말로 이별하게 될 그 마지막날의 서울이 더욱 나에게 선명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다 보면 나도 어쩌면 나의 오늘이 내 마지막 하루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감을 갖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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