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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May 27. 2024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길을 걷게 되면

'실패'와 '시행착오'를 착각하면 벌어지는 일

"저 성공할 수 있겠죠?"


2016년 겨울 어느 날 내가 뱉은 한 마디다. 수학 강사의 삶을 접고 아는 형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합류 한지 약 2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막연하게 선택한 길. 스타트업의 의미가 뭔지도 몰랐고, 내가 해봤던 일들도 아니었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 하나로 선택한 길. 당연히 모든 것이 낯설었고 어색했다. 그리고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빡세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침 9시 반에 출근을 하면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었다. 배웠던 업무를 적응함과 동시에 새로운 업무를 계속해서 쳐내야 했다. 배경지식을 따로 공부할 시간은 없었고 오로지 정면돌파 해야만 하는 일들이 수두룩 했다. 루틴 한 업무 속에서 사건 사고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고, 수습하는데 하루를 온전히 쓰다 보면 밤의 어둠과 함께 사고를 수습하느라 쳐내지 못한 기본 업무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일주일 중에 집에 가는 날보다 회사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고 라꾸라꾸(접이식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았다.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서울의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으며, 서울은 경쟁이 기본적으로 깔린 곳이기에 서울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수고와 노력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사 두 달째 되던 어느 날 밤. 하루하루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을 처내기에만 바빠던 날을 마무리하는 날 밤 내 머릿속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 회사는 과연 성장을 하기는 하는 것인지, 내가 만족할 만큼의 돈을 벌 수는 있을는지도 모르겠는(참고로 이때의 나는 엄청난 박봉이었다.), 일순간 깊은 회의감과 공허함이 나를 채웠던 하루였다. 그때 사무실에 있던 사람은 나와 형 이렇게 둘. 



"형"

모니터 화면을 끄면서, 나는 형을 불렀다.


"왜"

형의 짤막한 답에 나는 한 마디를 툭 내뱄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내뱉은 한 마디,


"저 성공할 수 있겠죠?"


막연함이 가득했던 그때 당시의 내 머릿속을 나는 정리할 수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 속에서 내 시야는 오로지 그날 할 일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루를 끝낸 후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구릿빛 피부마저도 뚫고 나오는 다크 서클과 한숨뿐이었다. 호기로웠던 입사 첫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질문에 형은 이렇게 답했다.



"성공이 뭔데?"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 아닐까요?"라며 나 자신에게 매우 무책임한 말을 내뱉고는 접이식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하루하루 일을 처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만 사로잡혀 자신의 길을 돌볼 여유를 찾지도 못했던 그때의 나는 그렇게 그 회사에서 5년의 시간을 보냈다.



 폭풍과도 같은 사건 사고들을 계기로 퇴사를 하고 인생의 허무를 맞이했을 때, 또다시 그때 형이 물었던 질문이 머릿속에서 말풍선처럼 떠올랐다. 이때의 나는 여전히 그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물음에 답하기에는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아온 찌든 때를 닦아내고 수없이 찾아오는 무기력함을 감당하고 부모님의 이혼 속에서 찾아온 혼돈을 수습하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답을 회피했다. 퇴사 후 막연하게 선택한 헤드헌터(채용시장의 인재를 채용사에 추천하는 직업, 채용시장의 부동산 중개업이라 보면 되겠다. 대부분이 프리랜서)의 삶을 살면서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에 쫓기기도 했지만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자유감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나름 만족했다. 그러나 이 또한 2년이 채 되지 않아 내가 정착하기가 녹록지 않았던 삶이었다. 이때가 2023년 여름이었다. 이때의 나의 머릿속에는 또 한 번 형의 물음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작심하고 내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여태껏 내가 선택해 온 것들을 머릿속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이 물음에 대해서 답을 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무엇을 한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선택을 할 것만 같았다. 수학 강사의 길을 선택하고, 형의 권유로 스타트업을 들어가고, 그저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 좋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선택한 헤드헌터의 업무까지. 내가 선택한 길들을 하나하나씩 되돌아가보니 느낀 것은 한 가지였다.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궁핍함이 싫었다. 돈이 많다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여러 길을 선택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기준은 돈이었다. 돈이 나의 진심이라 생각했기에 나를 고된 일 속에 갈아 넣었고, 그것이 책임감이라 생각했으며, 그러면서 겪는 고통은 성장통이며 시행착오라 생각했다. 하나 책임감은 어느새 부담감으로 다가와 나를 옮아맸다. 내가 겪은 고통은 성장통이라기보다 내 마음을 부정하면서 생기는 아물지 않는 상처였다. 딱지가 생긴 곳을 떼어낸 곳에는 영광의 흉터가 아닌 보기 흉한 것이 생겼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진심"을 다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지금의 나는 확신한다.



"진심"이 아니라 "감정"만이 담긴 길을 걷게 된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성장통을 겪고 성장할 수 없다. 그것은 성장통을 가장한 상처가 곪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진심"이 없는 길에는 고름 같은 좌절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다시 또 선택할 수 있음도 나는 안다. '일'에는 생계가 걸려 있고, 생계는 곧 '돈'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택할 때에는 진정한 "진심"을 온전히 녹여 넣거나 아니면 매우 냉정하게 돈벌이로서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본다. 

나는 "진심"이라 생각한 내 "감정"을 일에 녹였을 뿐이었다.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 "무엇"인가를 서른이 넘게 뒷전으로 방치해 왔고 이제야 겨우 찾아가고 있다.


나는 지난 내 몇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아니라 실패해 왔다고 자신한다. '시행착오'는 자신의 길에 진정 "진심"을 담은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단어이다. 나는 "진심"을 담지 못했다. 이제와 서라도 늦지 않게 내 진심을 탐구할 수 있음에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 과거를 시행착오라고 부르며 위로 삼고 싶진 않다. 


여전히 "성공이 뭔데?"라는 답에 멋지게 답할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진심"을 가진 사람은 이 질문에 계속해서 가까워질 것이고, 그 가까워짐을 순수하게 만끽하는 것만이 시행착오의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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