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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n 01. 2024

청계천 앞 꼼장어 집

서울과의 작별을 결심하다

2023년 초가을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를 결심한 때가.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시기. 나는 몇 달 동안 돈을 벌지 못했다. 그나마 그 해 초 벌어둔 돈으로 몇 개월을 연명하고 있었다. 내 직업(헤드헌터)에 대한 깊은 회의에서 시작된 고민. 


'서울에 살면서 정말로 내가 원했던 일들이 있었을까?'

'건축공학과, 수학강사, 스타트업 그리고 헤드헌터 모두 내가 원했던 일이 맞았을까? 아니구나. 모두 멋모르고 시작한 일들이구나.'


아마도 그때 당시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진정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돈을 있었고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곳이 많이 각박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겪은 내 과거에 대한 온갖 연민에 젖어 들어 연약해질 대로 연약해져 있었다. 내가 걸어왔고 선택한 길이 온전히 내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게 작별을 고하기로 결심했다. 



이맘때 즈음이다. 글쟁이를 업으로 삼고자 결심하넌 날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막연한 마음, 글쓰기라는 행위가 내 삶에서 꽤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 감수성이 꽤나 풍부하니 내 감정을 잘 담은 글을 써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생각에 그날 하루는 참으로 행복했다.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 겨울에는 귤을 따고 여름에는 해수욕장 근처에서 일을 하며 남은 시간에는 글을 쓰면 되겠다는 나름의 연약한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설렘과 기쁨에 온몸이 감격했더랬다. 



서울과의 작별, 그리고 글쟁이가 되겠다는 결심을 갖은 다음날. 나는 청계천으로 향했다. 굳이 청계천을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광화문역 인근에서 지인과의 약속이 있었을 뿐. 집으로 가려 역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리고 중앙일보 앞의 커다란 원기둥 조형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청계천이 있었다. 청계천, 20대 때 과제를 하려고 걸어본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 이제 곧 헤어질 서울인데 청계천이나 한 번 돌아보고 가자.'


난생처음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한 다음날이라 그런지 고향 생각에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그때였다.


청계천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을 때 순간 내 후각을 후벼 파는 냄새가 났다. 익숙한 양념구이 냄새였지만, 내가 그동안 먹어봤던 음식의 향과는 오묘하게 달랐다. 처음 맡아보는 오묘한 향에 이끌려 청계천 앞 계단에서 방향을 틀어 먹자골목으로 들어갔다. 삼겸살 냄새도 갈비 냄새도 아니었고, 생선구이 냄새는 더더욱 아니었다. 대체 어디길래 이렇게나 걸었는데도 냄새가 끊기지 않는 걸까. 몇 걸음 더 가보고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드디어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공평동 꼼장어'


태어나 몇 번 먹어보지도 않은 꼼장어 구이 냄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향을 쫓아 결국 가게 앞까지 온 나. 평소 같았다면 그렇구나 하며 지나칠 서울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이 날 맡은 꼼장어 구이 냄새만큼이나 매우 익숙하지만 오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리고 황홀함까지도 느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내 시야의 모든 것들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투박해 보이는 식당 전경.

불판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꼼장어를 초벌 하는 직원.

동그란 드럼통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연탄불에 익힌 꼼장어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버스정류장에서 훔쳐오진 않았을까 의심되는 의자에 앉아서 웨이팅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느새인가 가게에 와서는 거리에 의자를 놓을 수 없다며 치우라고 지적하는 공무원들.

능청스럽게 의자를 치우고 공무원이 떠나자 다시 의자를 거리에 가져다 놓는 꼼장어집 사장님.

길을 지나다가 꼼장어 집의 냄새에 이끌려 걸어가면서 쳐다보는 사람들.


나의 눈에 담기는 모든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왜일까. 평소에 사진이라고는 운동을 해도 변하지 않는 내 알몸을 찍는 게 전부인 나인데. 이 기시감은 무엇일까. 생각에 잠긴 지 1분 즘 지났을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여행의 마지막날이구나.'



'너무 아쉬운데 사진이라도 맘껏 담아야겠다.'

'어? 이곳은 내가 어제 봤던 곳이 아닌데 신기하네? 언제 또 올지 모르니 찍어두자.'

'하아, 오늘이면 여길 떠나는구나. 많이 찍어둬야지.'



이 날의 꼼장어 집 앞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자 했던 내 마음은, 여행의 마지막 날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아쉽고 또 아쉬워서, 언제 올지 모르니 사진에라도 담아보자 하는 여행 마지막 날의 내 마음. 서울에서의 15년이라는 긴 여행을 마무리하려는 내 마음과 같았다.

이 날로부터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이 날 내가 머릿속에 그린 생각이 뚜렷하다.



'서울이란 녀석이 각박한 게 아니라, 내가 서울을 각박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서울도 충분히 나름의 낭만을 가지고 있구나'

'난 왜 이런 서울을 느껴보지 못했을까?'

'떠나려니 아쉽다. 너무 아쉬워.'



이 날은 나에게 서울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두 번째 날이기도 했지만, 서울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첫날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같이 사는 친동생과의 몇 가지 현실적인 이슈로 당장 제주를 내려가는 것을 보류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더랬지.

2023년 늦여름, 단 하나의 냄새에 이끌려 흔하디 흔한 서울의 풍경을 본 그날. 그날부터 나는 매일이 서울과의 마지막 날인 듯, 서울의 일상이 너무나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집 근처 벽돌벽, 퇴근시간만 되면 꽉 막히는 차도, 출근시간 개찰구의 투 툭 거리는 소리. 서울의 일상적 풍경들에 내 오감이 자연스레 반응했다.  



여전히 나는 아직 서울에 있다. 각박함이 가득한 서울이 싫어서 떠나려던 나였다. 하지만 서울은 각박하지 않다. 서울에서의 15년이라는 긴 여정동안 나는 행복을 느꼈다. 각박함은 그 긴 여정동안 내가 만든 감정일 뿐이었다. 물론, 아마도 나는 멀지 않은 미래에는 진짜 서울과 작별을 하게 될 것이다. 그날은 정말로 서울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여행의 마지막날이 되겠지. 



매일이 서울과 이 마지막인 듯, 서울과의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날인 듯, 이렇게 살자. 

내가 담고 있는 서울의 모든 것에 애정을 둘 수 있는 삶. 

서울아 미안해. 네가 각박한 게 아니라 내가 각박한 거였어.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고, 내일 또 너와의 마지막 날인 듯 그렇게 온전히 너를 느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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