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y Jun 07. 2024

안경을 벗어야만 보이는 서울

"오늘 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가수 김건모의 노래 '서울의 달'의 가사처럼 텅 빈 방 안에 누워 이 생각 저런 생각에 기나긴 한숨과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오늘도 여전히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낸다. 밖으로 나왔다. 여름의 열기가 봄을 밀어내고 자기 자리인 양 계절을 차지하고, 봄은 아직 계절을 떠나보낼 수 없는지 산산한 바람을 뱉어내는 6월 초. 자전거를 타기 딱 좋은 날씨다.


서울엔 별이 없다.

달은 보여도 내가 서울의 밤하늘에서 별을 본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태어나서 20년 간 그토록 질리게 봐온 내 고향 제주의 별. 그게 이리도 소중한 것인지 서울에서 서른을 넘기고 나서야 알았다. 뭐, 지금은 그러려니 무감각하기도 하고 서울에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 대신 서울은 서울 나름의 괜찮은 밤의 조명들이 있으니까(라는 자기 위안을 억지로 삼아 본다.).



내가 사는 곳은 자전거를 타면 여의도 한강공원이 코앞이다. 한동안 타지 않아 안장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기운 빠진 타이어에 공기를 넣고, 노트북 하나만 가방에 싸매고 그렇게 집을 나선다. 영등포와 여의도를 잇는 다리를 건너면 횡단보도가 있고 그 앞엔 여의도 공원이 있다. 매번 이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걸릴 때면 내가 건너온 다리를 무심히 보곤 한다. 다리 양 옆 끝트머리에 일렬로 정렬한 가로등과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자동차들을 보다가 마치 최면에 빠진 듯 멍해지다 보면, 매번 초록불 신호를 한 두 번 놓치다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오늘도 어김없이 멍해진 채 다리의 풍경을 바라보다 가로등 조명에 비친 안경알에 먼지가 잔뜩 낀 것을 알아채고, 안경을 벗는다. 대충 옷에다가 안경의 먼지를 닦아내고 다시 쓰려고 고개를 드는 찰나, 내 눈으로 들어온 것은 언제나 내가 보던 다리 주변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새계로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카메라의 초점을 흐려서 찍은 사진. 물론 진짜 눈으로 본 광경과는 좀 다르지만, 배경이 아닌 불빛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느낌이 조금 와닿을 것이다>


일렬도 마주 보며 빛을 내던 무심한 가로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별들이 수놓아져 있다. 차도에는 별똥별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불빛들. 쓰려던 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나는 내 주변의 모든 모습들을 내 본연의 눈에 담는다. 휴일 저녁인데도 켜져 있는 사무실의 전등, 정해진 규칙에 맞춰서 빨강, 노랑, 초록 불빛을 바꿔가는 신호등, 그 신호등을 따라 목적지로 향하는 자동차들의 조명. 각자의 사연이 담긴 서울의 불빛들은 그 짧은 몇 초간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사한다.

찰나의 순간동안 바라본 이계의 별들은 내가 본 그 어느 별들보다 가까웠고 다채로웠고 입체적이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존재였고 자신들만의 빛을 뿜어내며 내 마음의 초점을 흔들어댄다.



물론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내 시력이 좋지 못해 생긴 매우 과학적이고 의학적이며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안경을 쓴다. 그 순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보고자 일부러 렌즈의 초점을 흐리게 해 봐도 내가 느낀 이계는 담아내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 공원에 도착해서 한강 다리에 다다른다. 역시나 사람은 바글바글. 지금이 한강에 오기 딱 좋은 날씨라는 것은 나 말고도 서울의 모든 사람은 안다. 한강의 잔잔한 물줄기가 잘 보이는 적당한 자리를 찾기 위해 강가 근처로 내려갈 즈음 난 또 한 번 내가 경험한 이계를 느끼고 싶었다. 이미 내 시력의 한계로 인한 초점 흐림 현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괜한 기대감 없이 안경을 벗는다 (물론, 내 마음속 어딘가 한 구석에는 다시금 몇 분 전의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그득하다.).



아까와는 또 다른 세계. 한강의 물줄기는 은하수가 되었고, 한강 다리의 가로등은 수십 개의 달이 되었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실루엣이 되어 입체감을 더한다. 알고 있다. 내 눈앞에는 그저 6월의 한강 공원의 풍경이 펼쳐져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상상해 내고 찰나의 순간 느낀 것은 이계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현실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놓인 광경을 초점 잃은 광경을 한동안 묵묵히 눈에 담는다.



서울의 하늘은 스모그와 미세먼지 각종 매연이 그득해서 절대로 별을 볼 수 없다. 제주에서 나를 어루만져주었던 자연의 존재들을 서울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늘만큼은 어디에서나 공평하다 생각했기에 서울의 밤하늘 또한 별이 반짝일 것이라 스무 살 초반의 나는 바랐었다. 그 바람은 내 적막하고 삭막한 서울에서의 십여 년의 시간과 함께 메말라 갔다.


내가 느끼는 이계의 밤은 서울의 밤이다. 그저 서울이다. 그러나 온전한 내 눈으로 담은 서울의 밤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많은 별과 달이 하늘을 수놓는다. 오늘이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 그 마음을 간직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오늘도 그러한 날이고 그런 밤이다. 이런 내 마음이 서울 하늘에 별을 만든다. 사진으로는 결코 온전히 담을 수 없기에 기록물로 간직할 수도 없다. 여태껏 수 없이 안경을 벗고 밤풍경을 마주해도 열리지 않았던 세계. 그 찰나를 글로 표현해 본들 다른 이들에게 와닿을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 같다. 내 글의 미학적 한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그 찰나가 만들어낸 몽환적인 모습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이기에,


오늘이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진심을 담아야만 겨우 느낄 수 있는 찰나이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청계천 앞 꼼장어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