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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Apr 11. 2023

예의는 인성이 아니라 지능 : 신경끄기에 대하여

예의없는 주변인에게 고통받는 그대에게

  흔히들 사회생활을 하면 좋든 싫든, 정말이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그것은 비단 사회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가까운 사람에게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가족은 이미 완성된 "유대"가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참을 수 있는 한계용량이 더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문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과의 문제에 있어서 예의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하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경기도 양주에서 군생활을 하던 도중, 우연한 계기로 옆 부대의 선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닿았다. 내가 속했던 병과는 굉장히 좁아서, 한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이이거나, 적어도 얼굴은 아는 정도의 좁은 조직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선배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 선배의 소개를 받아 처음뵈는 선배장교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선배와의 만남이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나를 소개해주는 선배의 소개인사에 뒤어 날아오는 예의없는 말들.

"인사해, 얘가 OO이야. 이 친구는 전역해"
알고 지내던 선배의 소개멘트에, 나는 얼떨결에 경례와 함께 새로만난 선배에게 인삿말을 건넸다.

"충성!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OOO이라고합니다."
그러자 그 선배는 경례를 받안 직후,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전역해? 집에 돈 많아?"

   저 말들 듣고나자 나는 순간 멘붕에 빠졌다가,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그 선배 특유의 친해져보고자 하는 위트일수도 있고, 그가 어릴적부터 가져오던 환경과 경험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일지도 모르겠다는, 나름대로 그를 위한 변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상 이러한 몰상식에 대해서는 저지른 사람이 변명이나 사과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무엇때문인지 그를 위한 변명을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가 홀로 납득해야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보통 장기를 향해 달려가는 대위들의 만남(?)에서, 전역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무슨일이 있지 않을까? 혹은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가? 라고 생각해주길 바란 나의 욕심이 빚어낸 마음아픈 결과였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혼자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인터넷에서 어떤 강사가 자신의 강연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다. 

"예의는 지능순"이라고. 대충 그의 말을 기억나는대로 정리해보면, 결국 예의는 상대방의 입장을 선천적인 천성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의 사회생활의 한 일부분으로서 "학습"되고 "기억"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나니 예전의 그 기억, 그리고 기타 다른 "예의"의 문제로 스스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다.


  주변의 "예의없는 사람들"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퇴근하고나서도 혹은 몇년이 지난 이후에도 말못할 우울감에 빠져있는 여러분들께 꼭 이 말을 공유하고 싶다.


예의는 지능의 문제다. 

예의는 학습되고 기억될 수 있는 사회적 스킬이다.


따라서 혹 내가 예의가 없다면, 나는 그걸 학습하고 배워서 예의를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분 주변의 누군가가 예의없는 행동을 하는가?

그 사람의 지능이다. 그러니 불쌍해 해주고 조금 더 옆에서 챙겨주고 물이라도 한 번 더 떠다주자.

그 사람의 지능에 대해 여러분이 함부러 판단하지 말라. 얼마나 불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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