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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Apr 19. 2023

당신은 좋은 상사입니까? : '강단'있는 결정이란 착각

상사와 부하들 사이에서, 망신을 견뎌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소대장 들어오라 그래."


  대대장의 그 한마디는, 회의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었다. 

뜨거운 6월, 안양의 초여름의 날씨였음에도, 회의장은 완전히 얼어붙을 정도였다. 그 말을 듣는 주인공인 나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마저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것을 보면, 그러한 감상은 나뿐만 느낀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이 대화의 이전 상황에 대한 설명이 조금 있어야겠다.

대대장은 부대운영에 관한 지시사항을 하달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내가 데리고 있는 소대의 운영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운영의 방식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함이었다. 


  문제는, 그것에 대해 나는 이미 부하들과 많은 논의를 해왔고, 관련해서 부하들의 의견과 그것의 조율, 그리고 다른 몇 가지 대안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대대장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했고, 이후 그 논리를 같이 보고하려고 했던 와중, 대대장이 바로 저 말을 한 것이다. 


  즉, 그가 지시하고 싶었던 것과 나의 답변은 다른 것이었던 것이다.

아, 물론 대대장의 지시사항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병사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어떤 게 좋겠느냐' 하는 것을 알아오라"는 지시였음을 먼저 밝혀야 하겠다. 다시 말하면, 내가 모아 온 "병사들의 의견"이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혹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걸 면전에서 바로 표현하는 그의 태도에 나는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OO소대장.. 지금 말씀이십니까?" 

중대장인 나는 반문했고, 대대장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경비소대장의 번호를 눌렀고, 전화로 그를 부르면서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분노와 창피였다. 그 회의장에는 나보다 선임인 모 소령이 있었지만, 반대로 나와 4년 차이가 나는 모 대위가 함께 있었다. 그 장소에서 이런 전화를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전화 자체. 그 두 가지가 나를 괴롭혔다.


  "어, 중대장인데. 잠깐 대대장실로 올 수 있어? OO 관련해서.."

다행히 소대장은 나와 같은 전술관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대략의 상황을 짐작하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달려와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소대장이 회의자리에 앉기 무섭게, 대대장은 나에게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소대장은 나의 의견과 동일했다. 그건 비단 소대장이 나의 부하여서가 아니라, 그것에 병사들의 의견을 모아 온 "진실"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 말을 듣자, 대대장은 다시 한 숨을 쉬며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분대장들 들어오라 그래."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해당 부대 지휘관인 중대장과 소대장을 앉혀두고.. 병사 분대장을 부른다고?

나를 제쳐놓고 부른다는 게 "병사"라서 자존심이 상했다는 단순한 개념보다도, 결국 나와 소대장의 발언을 믿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저런 말을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 한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마침 해당 분대장들은 각자 근무 및 교육 등의 이후로 들어오지 못해, 중대 식구들끼리의 만남의 장(?)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저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회의가 끝난 이후 방에서 나오면서, 소대장과의 말없이 마주친 눈에서 그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대장은 그에게도 부하였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모아 온 <병사들의 의견>은 틀린 것이 아니라 진짜였으니까.

  이처럼, 나쁜 상사들은 부하의 창피와 망신을 먹고 산다. 그 망신만이, 창피만이 자신의 부족함을 덮을 수 있는 탈출구이자 모든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류의 상사들은 그야말로 불도저와 같아서,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전진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이나 조직관리 차원에서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휘권 행사"라는 논리로 모든 것을 방어해 낸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그렇게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도저 정신'을, 자신은 격을 깨고 소통하며, 강단 있고 리더십 있는 자신의 행동으로 교묘히 포장한다는 점이다. 혹여 그것도 아니라면, 그것을 포장하는 게 아니라, 정말 본인이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망상에 가까운 상상 속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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