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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May 20. 2023

자기혐오 - 다른이들의 비난과 괴롭힘에 적응하다.

전역을 마주하는 10년차 대위의 자기혐오와의 대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건 너무 거창한 질문이다. '나는 어떤걸 싫어하고 어떤걸 좋아하는걸까?'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근래 몇년전부터 유행처럼 떠도는 말들중에, '메타인지(meta認知, metacognition)'라는 말이 있다. 정말 쉽게 이 말을 풀어보자면, "내 자신의 능력이나 상태, 수준을 스스로 인지하는 능력"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우리의 사회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서 이 능력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근래들어 이러한 메타인지의 중요성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심리학의 대두는, 지금까지의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인자가 부족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더러 해본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해야하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것에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아주 기초적인 질문들조차 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대체 왜 그랬을까'처럼 나도 완전한 자격지심과 낮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자기혐오에 똘똘 뭉쳐 있었을 때가 있었다. 소위로 임관한 이후에도 사고를 치고 다니기 일쑤였고, 내 마음과는 다르게 매일같이 불려가 혼나는 일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그 혼나는 일들의 대다수는 나의 업무능력 부족이 바탕이 되는 일들이었고, "혼나도 괜찮아! 하지만 똑같은 실수는 이제 하지 말자!"라는 스스로의 다짐은 그 다음날 바로 똑같은 실수를 하면서 오히려 더 크게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중위로 진급하고나서도 그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서, 매일같이 혼나면서도 하루 18시간의 업무강도를 이어나가야만 했고, 당직근무로 인해 전날 밤을 지새웠어도 근무취침은 할수조차 없었다. 타고난 성정이라도 강성이었다면 "지들은 뭘 잘났길래 나보고 난리들이냐!"라고 허황된 저항이나 분노라도 표출해보았겠지만, 그렇지못한 나로서는 그저 내 안으로 잠식해들어갈 뿐이었다.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놈이고, 맨날 실수하는 놈이고, 장기복무에 실패한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그런 생각들이 온통 머리에 가득했다. 인격모독에 가까운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무엇인지 모를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래, 내가 문제였으니까.



  내가 겪게된 사회생활이 비단 그런 것 뿐이었겠느냐만은, 군 생활의 대부분은 책임을 추궁하거나, 소위말해 '탓'하는 문화가 주류로 자리잡은 조직이었다. 어떤 사고가 나면 책임자는 누구인지, 누가 지시했고 어떤 배경에서 그랬는지, 관련된 안전교육은 했는지 등의 절차로 진행되어 '탓'할 상대방을 찾느라 혈안이었다.


  그런 성향을, 군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나서는 나에게는 없을까? 분명, 나에게도 분명 '탓'이 있었다. 내가 장기가 안된것은 다른이의 탓, 이번에 대대장에게 혼난것은 다른이의 탓, 오늘 제대로 성과를 내보이지 못한것도 다른이의 탓.. 바로 그렇기에, 요즈음 뜨는 '메타인지'에서도 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나를 돌아보았고, 돌아보는 모든 과정은 다시 자기혐오의 과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잘난듯, 뭔가 깨달은듯 나도 글을 써보고 있지만, 나 또한 많은이들과 같은 평범한, 어쩌면 평균보다도 조금 더 속이 좁거나 예민한 일반인일 뿐이다. 그렇기에 메타인지를 하면 할 수록 나에 대한 혐오감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인지, 즉..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캐치하는 능력, 나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 조금은 속좁은 시야로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속좁으면 어떤가. 조금은 비루하면 어떤가. 나는 내 있는 그대로, 내가 담을 수 있는 방법과 방향대로 메타인지를 하기로 했다. 내가 조금 부족하면 어떤가. 내가 모자라면 어떤가. 스스로를 '인지'했다는 그 자체로도 이미 나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만약 '인지'하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현실화 할 수 있는 '행동'만 남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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