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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Mar 31. 2023

시련은, 그 시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온다.

지금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겪는 모든이들에게

  10년 간, 버텨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정도의 나의 군 생활은 나에게 참 많은 시련을 부여했었다. 평생 직업군인을 꿈꾸고 들어갔던 군대에서, 채 2년이 지나지않아 강제전역이 결정되었던데다가, 동시에 남은 8년의 기간동안은 나의 확정된 전역을 버티고 지나보내야만하는 그야말로 "시간과 정신의 방"과도 같았다. 결말이 정해져버린 쳇바퀴속에서,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주는 "희생과 봉사"를 빙자한 강요와 압박들은 나로 하여금 더 많은 반발심만을 불러왔다. 


  그러한 이유때문이었는지, 나는 대부분의 동기생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동기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여러가지 소식들을 들을때마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미련"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고 퇴근후의 나를 잠식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만큼이나 군인은 나에게 평생의 꿈이자 어렸을적부터 가져온 유일한 목표였다. 그러나 유일한 목표가 없어져버린 표류하는 배처럼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좌절감, 그리고 나아가 반발심과 자기혐오에 빠졌으면서도 감정을 올바르게 분출하지못하고 고된 야근과 인격모독속에서 시간을 보낸 강원도 부대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어두운 터널속에서 좋은 선후배 장교들과 동기생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함께 지내던 선배가 어느날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기억이 난다. 


"시련은, 그 시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그 선배의 말에 따르면, 내가 이렇게 아파하고 고민할 수 있는 것 모두 내가 그만한 시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저 말만 해준 선배에게, 저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렇게 큰 울림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 말의 무게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 어떠한 말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당시의 나의 좁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 말을 들은지도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것도 요즘에 와서야 저 말을 다시 더 강한 무게를 가지고 내 속에서 생겨났다. 전역을 앞두고 여러가지 일들과 준비, 시간은 없는데 해야할 일들을 많다는 촉박함,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중압감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모두 터져버릴것만 같은 요즘, 다시금 저 말이 상기된 것은 나에게 있어 큰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교로서 장기복무에 선발되지 못하고, 군 생활 그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들 모두 내가 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내가 장교로 임관하지 못했다면 애초에 고민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유튜브 시작에 대한 고민들과 채널 방향성 설정의 문제로 인해 많은 고민과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들 모두 내가 시간을 쪼개고 부탁하여 동영상 편집 기술을 배우는 노력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지나간 철길을 뒤돌아보는 것 처럼,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고통과 시련들은 내가 그 시련을 겪을 수 있는 위치에 가기까지 나의 노력이 모두 포함된 것들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겪는 시련들은 모두 내가 그 시련을 뛰어넘을 준비가 되었기에 찾아온것들이었다. 내가 아무런 시도조차,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 아무런 시련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렇기에, 앞으로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시련들을 마주보기로 했다. 그것도 기분좋게.

나에게 또다른 시련이 온다는 건, 그 시련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한 내 노력을 증명해주는 산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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