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연합군의 첫번째 공동작전!
4월부터 시작된 왜군의 침공은, 200여년 간의 평화를 누리면서 무너질대로 무너져버린 조선군을 격파하여 파죽지세로 북상했습니다. 익히 아시는것처럼, 결국 선조는 파천했고, 왜군은 한양을 함락한 이후에 북상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음력) 6월 중순 경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 의해 평양이 함락되며, 조선군의 북방 방위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제1차 평양성 전투) 그나마 다행인것은 각지의 의병들과 이순신의 분투로 인해 왜군의 보급로가 불안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니시는 더이상 진격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조선의 요청으로 인해 명나라의 원군 선발대 약 5천여명이 도착, 평양성에 대한 조명연합군의 공세가 시작되니, 이것이 바로 제2차 평양성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명나라군은 왜군을 얕잡아 보고 있었고, 고니시는 평양성의 성문을 활짝 열어두고 명군을 유인, 이후 조총부대를 활용한 매복작전으로 격퇴하였습니다. 이 전투의 패배로 명군은 다시 요동으로 철군하고, 다시 홀로남은 조선군은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