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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Mar 07. 2023

책임은 "묻는"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다.

고달픈 직장생활, "책임"이라는 것에 대한 고찰

  미 최고의 특수부대 중 하나인 네이비씰 출신의 컨설턴트 조코 윌링크(John Gretton "Jocko" Willink)는, 그가 겪은 전장상황 속에서 얻어낸 비결인 "극한의 리더쉽"을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극한의 리더쉽이란, 쉽게 말해 <남탓을 하거나 책임을 돌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의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비로소 나는 "책임"이란 단어가 어떻게 쓰여야하며, 그와 동시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군 생활, 그리고 특히 장교로서의 군 생활에서 가장 많은 질책과 부담감을 느꼈던 부분은 바로 "책임" 이었다. 소대장이나 중대장과 같이 예하에 병력들을 많이 통제하고 있는 직책일수록 그 책임은 더 많아지고 커졌고, 예하에 병력이 없는 참모장교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파트의 업무와 그 추진에 대한 책임도 결코 작지 않았다. 물론 한 명의 조직원이자 어른으로서 이러한 책임은 당연히 필요하고, 때론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겪은 군대에서의 여러가지 사건들은 나로 하여금 사람과 조직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했다. 중대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중대 내에서 병사들간의 부조리가 발생하거나 음주사고가 발생하면 항상 대대장실에 불려들어가 "책임"에 대한 일장연설을 들어야하만 했다. 중대장이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느니, 책임을 져야한다느니... 들으면 들을수록 맞는 말이지만, 나의 마음속에서는 왠지모를 반발심만이 생겨났다. 당시 대대장은 "책임학 박사" 수준이었는데 거의 모든 말끝마다, 사안마다 "책임"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대대장의 지휘기조에 따라, 예하부대의 지휘관들은 상식적이고 효율적인 조치보다는 책임소지의 유무에 중점을 둔 지휘를 현장에서 할 수밖에 없었고, 지속적으로 대대에서는 끊임없는 불협화음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용기있게 소신껏 의견을 개진했었을 때였다. 아마 병사들의 상벌점 제도에 대한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용기있기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멋진사람이었거나 뚝심있는 사람이었다기 보다는, 전역까지 얼마 남지않은 나의 상황과 감정들이 거의 나를 등떠밀다시피 했던 일이었다. 결국 직언을 들었던 대대장은 한 가지 마법같은 말을 내뱉었는데, 아마 이 레퍼토리,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는 여러분이라면 들어보셨을꺼라고 생각한다. 



"이봐,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꺼야?"



  이 마법같은 한마디는 우리의 모든 신경과 사고를 정지시키고, 거대하게 돌아가는 조직에 혈혈단신으로 맞서는 황야의 외로운 검객이 되어버린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결국 저 마법의 단어는 우리를 정통으로 가격하고,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치게 만들기까지 한다. 대대장의 저 말 한마디에 나는 모든 의지를 잃고 대대장의 의견에 동의했고, 그럼으로서 나는 나에게 '책임소지를 묻지않겠다'는 대대장과의 암묵적인 상호합의를 극적으로 보게된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대대장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중대장으로서 이러한 시스템에 실망하지는 않았었다. (왜냐하면, 이미 군 조직에 대한 나의 실망감은 이전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다시 처음에 이야기했던 조코 윌링크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나는 나의 부하들에게 어떠한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책임을 묻지는 않았는지 곱씹게 되었다. 창피하게도, 나로서도 차마 말 못한 부끄러운 순간들이 없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임은 "묻는"게 아니라, "지는"것이다.> 즉, 책임은 어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책임이 있는 사람이 그 스스로의 자신에게 주는 극한의 리더십이자 오너십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해왔던 군 생활에서는 그런 풍경을 많이 보지 못했다. (물론, 그런 리더십을 보여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서도.) 상황실에 보고되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을때 가장 먼저 들려오는 질책은 "책임자가 누구야?" 내지는 "너는 보고 받었어?" 였다. 사고가 발생했을때는 항상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 혈안이 되서 기어코 찾아내어 벌을 주고야만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사람은 많아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책임은 묻는게 아니다.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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