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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Sep 25. 2023

사회생활은 오해의 연속 - 일일이 풀 수도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졸여야 하는 - 

  예전에 어느 신문이었는지, 혹은 잡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어떤 '설문조사'를 봤었던 기억이 난다. 직장을 비롯,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는데, '사회생활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결과였다. 그 결과는 별로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꼽으라면 항상 전통의 강호로 등장하는 '인간관계'가 1위를 했었던 것 같다. 매우 상투적이었지만 그만큼이나 나로서도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으니까.


  사회생활은 정말이지 인간관계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오해'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애초부터 좋은 인간관계라면 문제가 될 여지가 없고(물론,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애초에 나빴던 인간관계라면 처음부터 (원하던, 원치 않던) 대립과 벽이 생길 테니 오히려 어느 정도 신경을 끄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해'라는 건 조금 다르다. 


  나 역시, 그러한 오해 속에서 살았으며, 지금도 그 오해의 그림자에 멈춰있다.

그리고 이 오해는 아마 누구라도, 언제까지라도 우리의 주변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경기도 OO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보다 1년 선임인 한 선배가 있었는데, 업무상 능력도 매우 출중하고 두뇌회전도 빨라 굉장히 두각을 나타내는 장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렇듯) 그 선배도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선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특성 때문이었기도 했다. 

  그 선배는 자신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애정표현(?)이 있었는데, 아마 꼬집거나 장난으로 때리는 등의 시늉을 통해서 그걸 표현했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그러한 장난의 정도가 조금 지나쳤다는 것이었다. 그 선배는 나의 가슴을 꼬집었던 적도 있는데, 다음날 즈음에 샤워하려고 옷을 벗으니, 꼬집힌 자리에 멍자국 때문에 젖꼭지가 3개로 보이는(!) 마법 같은 일도 겪었더랬다. 


  그러던 와중 그 선배가 하루는 지휘통제실에서 나에게 장난을 쳤다. 지휘통제실에 비치되어 있는 '초동조치봉'(말 그대로 초동조치를 위한 몽둥이)을 들더니, 나에게 '야, 엎드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말투는 장난기가 가득한, 흔히 유격장에서의 교관이 내는 말투를 따라 하는 듯 한 모양새였다. 나도 그러한 선배의 장난에 맞장구(?)를 치기 위해서 한 명의 교육생 마냥 '엎드려!'라는 우렁찬 복명복창과 함께 지휘통제실의 책상을 잡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장난으로 엉덩이를 톡톡 때리려고 하는 줄만 알았는데, 장난이 과한 성격인 그는 그야말로 그 몽둥이를 이용해 나에게 불벼락을 하사했고, 첫 한 방을 맞고 난 뒤 나는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해서 벌떡 일어나면서 그에게 왈칵 짜증을 쏟아부었다. "아, 진짜 아픕니다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약간의 투정을 섞는다고 섞어보았는데, 나의 감정선은 약간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결국 선배는 그것을 사과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이미 지휘통제실의 많은 사람들이 목격을 했기도 했고, 나 또한 다른 후배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사건은 급하게 진행되게 되었다. 세부적인 사항들은 특정인을 특정하거나 혹여 다툼의 여지가 있어, 넘어가도록 한다. (혹시나 관련하여 나의 진정성은, 8사단 헌병대와 군 법무부, 그리고 자필 진술서와 상호 간에 주고받은 공문서가 있으니 언제든지 당당히 증명이 가능하다.)


  이후, 그 선배와 여러 가지로 불편한 관계에 있던 선/후배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의 엉덩이 폭행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고, 그 선/후배들은 나에게 신고를 종용했다. 그러나 어차피 멀게는 전역, 가깝게는 타 부대 전출이 가까웠던 나로서는 그냥저냥 미적지근했는데, 나는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 와중에도 항상 나의 중심을 잡아주고, 나의 의견을 먼저 물어봐주었던 같은 학교 출신의 1년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에게는 아직도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결국 한탄강에서의 물놀이를 하고 있던 어느 주말 오후, 나는 사단 헌병대로부터 피해자로서 사건에 대한 사실여부와 향후 조사 일정 조율을 위한 전화를 받게 된다. 




  결국 그 선/후배들에 의해 사건은 접수되었고, 나는 폭행사건의 피해자로서 사단 헌병대 조사실에도 들어가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물론 가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분위기에 압도되는 것도 참 사람 못할 짓이다 싶었다. 나는 내 나름의 자필 진술서와 그간 써왔던 나의 일기장, 그리고 나의 핸드폰(멍자국 사진을 찍었다 지웠다)에 대한 포렌식 복구의 동의여부를 묻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나왔다. 마음이 불편하건 어쨌건, 엉덩이를 맞았고 피멍이 든 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부대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나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물론 나와 절친했던 간부들과 전우들은 나를 언제나처럼 환영하고 이야기해 줬지만, 대다수의 간부들에게 뒷얘기들이 흘러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나는 어느새 '가볍게 엉덩이 한 대 맞은 것으로 선배의 군생활을 끝장내려는 후배'가 되어있었고, 해당 선배를 총애(?)하던 대대장에게는 물론 겉으로는 아니었지만 거의 보복성에 가까운 인사조치를 받게 된다.(이 사건은 다른 글에서...) 


  또한 대대장은 나의 피해사실을 면담을 통해 확인하고, 면담일지에 "본인이 희망하지 않은 신고여서 당황해하고 있음"이라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신고를 했던 선/후배들과 나의 사이도 갈라놓는 결과(의도했건 하지 않았건)를 낳았다. 결국, 그렇게 나는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오해들을 다 풀 수도 없었고, 풀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거짓말을 했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나는 적어도 떳떳하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도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오해를, 지금에 와서 내가 풀 수도 없는 노릇이고, 풀 생각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의 1년 선배들, 그러니까 나를 때렸던 그 선배의 같은 학교 출신과 그 친한 선배들 사이에서 나의 이야기가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모두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더욱더 어리석은 일일테고.


  사회생활은 이렇듯, 사건사고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오해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내가 풀고 싶다고 풀 수도, 감내할 수도 없는 그런 시간의 연속들. 견디기 어려운 그 시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어주는 몇몇의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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