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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Feb 16. 2024

오늘부터,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접습니다.

너도, 나도 다 같은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다. 


  생도 시절부터 특이하게도, 전쟁사 오타쿠로 잘 알려져 있던 나는 최근 들어 소령으로 진급한 동기들에게 많은 연락을 받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육군대학 교육과정의 교과목 중 하나인 '전쟁사'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나 또한 친했던 동기들이고, 또 도움을 받았던 적도 있기에 흔쾌히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몇몇 동기들은 조금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몇 년째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밤늦은 시각에 '어이 전쟁사 마니아!'라면서 카톡을 넣기 일쑤였다. 메시지 확인을 하지 않으니, 기어코 5분 뒤에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도 받지 않으니, '저기요 똑똑똑'이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가 전쟁사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생색내려는 게 아니다. 내 기분이 상했으니 너를 도와주지 않겠다 같은, 그런 비뚤어진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늦은 시간인데, 연락 괜찮아? 전쟁사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어서 물어보고 싶어서 연락했어'라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말투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다 내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전부 다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기를, 모두가 다 나의 기분을 신경써주기를 원하는 나의 복잡하고 알량한 욕심이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기제와도 같은 피해의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령으로 진급한 동기들의 모습 앞에서, 전역을 앞에 둔 내가 가지는 열등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부 동기들을 위해서는 전쟁사 리포트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 고맙다고,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하자고 나누었던 인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인사나 연락은 없었다. 사실 나조차도 그러한 인사나 연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섭섭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그러나, 나조차도 이기적인 인간이다. 내가 필요할 때만 딱하고 떠오르는 그 어느 사람, 그 연락을 나라고 안 해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그래서, 오늘부로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접으려 한다.


'인간은 다 이기적이니까 기대 따위 안 해' 같은, 시니컬한 피해의식으로서가 아닌, 너도 나도 다 같은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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