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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Mar 10. 2024

그렇게 갑자기, 고대하던 전역을 했습니다.

10년간의 군생활, 끝내다.


  올해 2월의 마지막 날, 나는 전역했다. 10년간의 장교 생활을 끝마무리 짓는 날 치고는 굉장히 싱거운 날이었다. 우리 부대에서는 이미 "원래 저희 사령부는 전역신고가 없다"는 말을 해주어서였는지, 나름대로 서운함은 이미 날아가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도 군생활의 시작과 끝은 신고라고들 하는데, 나는 첫 시작 신고는 있었어도 이렇게 끝내는 신고는 결국 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군대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물론 그중엔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이 당연하게도 모두 혼재되어 있었고, 여기에서 옥석을 가려내어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했고, 또 버려야 할 것은 버려내야만 했다. 이 모든 게 결국 오롯이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는 점, 그리고 첫 직장인 군을 떠나면서 '오롯이 전적으로'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조차도 이제야 처음 해본다는 점이 나를 무섭게 짓누르기도 했다. 


  흔히들 요즘 화두가 되는 '꼰대'나 'MZ' 등의 키워드가 쏟아지고 있는 인터넷에서의 직장 관련 밈이나 글들을 읽다 보면, 군대의 직장문화 또한 그에 걸맞게 답답한 부분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첫 사회생활을 군대로, 장교로 시작한 나로서는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었더랬다. 


  그러면서 얻어내면서 기를 수 있었던 개인으로서의 인내심(이걸 자랑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과 각종 진기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었던 경험들은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나의 인격과 성격에 묻어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질것이다. (좋은 점만 묻어 나오도록, 나쁜 점은 잘 닦아내야 한다는 책임감마저도 들기 시작한다)


  이 밖에도 기본적인 사회적 매너라던지, PC 문서 작성 방법이라던지, 큰 조직에서 하나의 부분으로서 가져야 하는 직업의식이라던가 타 부처와의 협업과 협조요청 등의 예의 같은, 정말 경험으로 부딪히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얻었다는 점에서 또 군대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내가 글을 써왔던 것처럼, 대다수 군인들은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일하는데 반해, "정말 저 월급을 받으면서 저렇게 일하는 사람이 있네?"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내 세금이 아까웠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 덕분에, 마지막까지 나의 전역신고는 이뤄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10년간 청춘을 바쳤던 곳, 그리고 내가 어렸을 적부터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전쟁사'의 중추적인 조직인 군을 계속해서 사랑하고자 한다. 그 안에 있는 몇몇의 좀도둑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조직의 가치와 진면목은 직접 경험한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자만심과도 같은 감정을 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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