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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찬 Mar 19. 2024

회의장에서 나한테 왜 그랬어요? 얄미운 동료 대하기

인면수심의 인간,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경기도 OO 사령부의 중대장으로 있을 적의 일이다. 중대장 이상의 지휘관들은 항시 병사들의 신상관리를 위해 대대장의 주관하에 모여 따로 월 1회의 '위원회'를 진행하게끔 되어있다. 이 위원회에서 사용될 자료들은 대부분 병사들의 신상이나 면담일지 등, 인사사항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서류는 모두 인사과와만 통해 주고받게 되어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 중대의 현황에 대한 작성을 마치고서 자료를 다 전송한 뒤 다른 업무에 매진하고 있던 와중에 인사과로부터 전화가 날아들었다. 친절하고도 소소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인사담당관이 친절한 말투로 내게 문의를 해왔다. 어느 한 병사의 신상이 최신화가 안 된 것 같다는 문의였고, 통화를 유지한 상태로 확인해 보니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의 실수임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한 뒤, 지금 바로 수정하여 5분 안에 다시 전송해 드리겠다고 답변했다. 다행히도 글자 다섯 자 정도만 바꾸면 되는 사소한 실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인사담당관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중대장님! 어차피 제가 최종확인해서 출력하는 거라, 제가 제 자리에서 바로 수정해서 회의 들어가겠습니다. 이따 회의장에서 뵙겠습니다!"


친절한 답변에, 나 또한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약 30분 뒤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회의장에서 각자의 자리에 출력되어 있는 우리 중대의 자료는 수정 전의 그대로였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당장 회의가 진행 중이고, 나의 발표차례는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발표 중간에, "제가 표에는 현재 수정을 못했는데, 지금 구두로 정정 보고 드리겠습니다"라고 대응하면 되겠다, 하고 나름대로 워게임(?)을 돌렸다. 그리고 나의 발표 차례가 되었다.


"OO중대장, 보고드리겠습...."


"야, 여기 이거 표는 뭐야? 왜 수정이 안된 거야?"


  바로 대대장의 질책 아닌 질책이 떨어졌다. 대대장에게 답변하기 전, 슬쩍 인사담당관을 바라보았다. 


인사담당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서류를 읽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항상 하던 대로 답변을 드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확인을 못했습니다."




  사실, 나라고 왜 할 말이 없었겠는가. 마음 같아선 그 자리에서, 친구와의 다툼을 일러바치는 어린 마음의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담당관이 수정한다고 했는데 왜 안 했는지 저도 몰라요!"라고 징징거리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더 나아가 어차피 우리 중대의 현황은, 중대장인 내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싶었다. 우리 중대의 현황이 틀린걸, 다른 누군가가 수정을 안 해줬다고 하는 것도 창피한 거니까. 조금 유치하긴 해도, 그게 지휘관으로서의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 자리에서 대대장은 약 5분간 질책했고, 뒤 이은 나의 보고차례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자명할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자리가 끝난 뒤에도 대대 넘버 2(?)인 운영과장에게 또 질책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거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잘못한 게 아예 없지는 않다. 나의 업무보고의 마지막 확인단계를,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맡겼다는 안이함이 바로 나의 큰 잘못이었다.



   물론, 인사담당관이 나를 해코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행동을 획책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내가 그 정도로 드라마틱한(?) 견제를 받을 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평상시 그가 보여준 보신주의적인 행동들이 바로 두 번째 이유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었던 중대 행보관은 인사담당관을 찾아가 커피를 마시면서 짐짓 건너들은 척, "아니 중대장님이 저번에 그래서 조금 서운하다고 하던데, 그거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아니 뭐 나도 실수한 거지 뭐.."라는 답변을 했다고 들었다. 그만큼, 그는 사악하지도, 사악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었다.

그는 '실수'만을 한 게 아니라, '잘못'도 같이 한 것이라는 것. 나에게 전화로 말해준 뒤, 자신조차도 수정을 못한 건은 비단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직장생활에서 그 정도 잘못도 안 하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으랴!)


  그러나 그가 회의장에서, 대대장이 표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했을 때 한마디도 못한 것, 그리고 나아가 그 자리가 끝났으면 나에게라도 찾아와서 "분위기가 그래서 껴들 수가 없었네요. 죄송합니다."라고 그냥 틀에 박힌 의사소통이라도 하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다.


이렇게, 회사엔 의외로 "이 정도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들을, 누군가를 욕하기 전 과연 나는 어떤가 하고 뒤돌아보는 것.

인면수심의 행동들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자가진단을 하고, 그런 동료가 있다면 다음부턴 그것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이 신경 쓰지 싫지만,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그것들이 직장인이구나! 

하고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


싫지만 해야 하는, 직생활의 한편에 머물러있는 부담스러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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