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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Mar 09. 2023

의미 없던 날들도, 나에겐 다 준비였음을(2)

무너지고 실패했던 일들도  나에겐 다 경험이었음을

  그렇게, 그 부대에서의 의미 없던 날들이 지나고 이윽고 타 부대로의 이동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조금은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지만, 다들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장교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부대를 옮겨야 한다. 다양한 부대와 작전환경 속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가 전출을 가게 된 부대는 육군 OOO 학교였다. 대위로 진급하는 장교들이 모여서 더 높은 수준의 군사전략/전술과 부대운영에 대해 배우는 곳이었다. 비록 군생활의 꿈을 접게 되었지만 당시의 나는 아직 "장기복무"가 가능하다는, 거의 현실부정과도 같은 수준의 실낱같은 희망을 믿고 있었기에 이러한 교육기관으로의 부대이동이 퍽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 교육기관에서의 나의 교육 태도도 비단 좋지만은 않았다. 이미 나의 군번짬이 되는 대위들은 대다수 장기복무를 희망하거나 확정된 사람들이었기에, 그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나의 직업적 박탈감은 상당했다.


  그곳에서의 교육은 거의 강의가 없었다. 교관님들은 그저 매일마다 "과제"를 내주었고, 학생장교들은 그 과제에 대한 문제를 직접 작성해와야 했다. 그리고 각자가 준비해 온 그 과제를 발표하고 서로 토의를 하면서 최상의 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수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군사전략과 전술에도 관심이 있던 나는 어느 정도는 과제에 참여하면서도, 나만의 전쟁사 공부를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그날의 과제의 맨 마지막에, 그날 내가 새롭게 공부하고 알게 된 전쟁사를 짤막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것을 본 교관님은 "군인으로서 전쟁사 연구도 좋지만, 과제에 조금 더 집중해라"라는 현실적인 걱정을 해주셨다.


  그러나 나의 전쟁사 노트는 계속해서 커져나갔고, 교육시작 3개월이 지날 즈음에는 아예 수업시간 도중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이 모습을 좋게 봐주신 교관님의 특별배려 덕분에, 매일 수업시간 시작 후 20분을 나의 전쟁사 강의 시간으로 만들어주신 것이다. 나는 그때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전쟁사를 준비했고, 그것을 20분 동안 동기들 앞에서 신나게 발표했다. 그 전쟁사를 준비하는 것은 어떠한 일말의 스트레스도, 걱정도 없었고 오히려 내일 발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자기 전 최고의 설렘을 선물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전쟁사"를 통해 밥 벌어먹어보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20 ~ 30명의 작은 교반에서의 강의였지만, 그러한 강의들은 나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러한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촉진제가 되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요즘 들어, 첫 부대에서의 나의 어둡고 컴컴했던 방황의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곤 한다. 정말이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소주의 알코올냄새가 가득한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의 울고 울었던 나날들이 생각난다. '내 인생은 망했어'같은 조바심과 좌절감에 휩싸였던 시간과 순간과 장소들 모두.


  그러나, 그러한 의미 없던 시간들이 모두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이따금씩 의미 없던 시간들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고 다시 발을 내딛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지극히 상투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의미 없던 날들도, 나에겐 모두 다 준비였음을.








추신 : 나의 교관이셨던, 육군 OOO 학교 오 중령님께 각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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