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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 추격전(3) : 작전 포기, 그리고 귀환길.

홀로 남게 된 비스마르크

by 김휘찬

영국 해군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영국 해군의 자랑이자, 전간기 영국 해군 그 자체를 상징하던 심볼인 순양전함 후드가 교전시작 8분 만에 격침당한 것은, 수세기 이래로 해양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으로서는 충격이자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습니다. 엉망진창의 상태로 교전에서 살아남아 도주한 영국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뒤따라오던 영국 순양함 노포크, 서포크와 합류합니다. 이들은 후드의 격침을 본국에 알려 보고하고, 함선을 재정비한 뒤 비스마르크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다시금 서둘러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The Royal Navy battleship HMS Prince of Wales leaving Singapore for her final cruise 08121941 CREDIT ALAMY.jpg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의 뒷모습. 비록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에 공을 세운 뒤, 일본군을 막기 위해 태평양으로 떠납니다.

비록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프린스 오브 웨일스였지만, 그들의 분투가 결코 아무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비스마르크에 명중시킨 3발의 포탄은, 비록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비스마르크의 발목을 잡게 되었습니다. 절묘하게도 이 포탄은 비스마르크의 연료 누출문제를 야기했는데, 함께 항해하던 프린츠 오이겐의 관측보고에 따르면 멀리서도 기름띠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바다에 기름냄새가 가득했다고 하니 그 유출량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속적인 급유를 받아왔던 프린츠 오이겐과는 달리, 재급유를 받지 않았던 비스마르크에게 있어 이 연료 누출은 굉장히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원래 독일 함대의 목표는 영국 해군과의 교전이 아닌, 대서양의 넓은 바다로 진출한 뒤 영국 해군의 추격을 뿌리치며 연합군의 상선을 격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재급유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부족한 연료만으로 대서양으로 나가본들, 비스마르크의 작전반경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 뻔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프린스 오브 웨일스로부터 받은 포격의 피해 때문에 배가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어, 최고속도로 항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도 했구요.

534706d1a8132221416f79b19d1f7ee9.jpg 큰 부상을 입은 비스마르크의 모습. 좌현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현을 일부러 침수시키면서 버텼지만, 점차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이 시점에서 전함 비스마르크는 작전을 포기하고 귀환하기로 합니다. 대서양에서의 통상파괴작전은 프린츠 오이겐이 혼자 벌이기로 했지요. 이제 비스마르크는 프린츠 오이겐이 안전하게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모든 영국 해군의 관심과 시선을 자신에게로 집중시켜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서 귀환해야 한다는, 비스마르크 자신의 작전 목적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말이지요.


뤼첸스 제독과 린데만 함장 사이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노르웨이로 돌아가자는 린데만 함장의 의견에 대해 뤼첸스 제독이 "이대로 항진을 계속하여 프랑스의 항구로 가자"는 의견으로 맞섰습니다. 결국, 비스마르크는 항진을 계속하여 독일의 점령하에 있는 프랑스 지역의 항구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photo053.jpg 1941년 5월 24일 아침, 항진하고 있는 전함 비스마르크의 모습. 독일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에서 촬영됨.

영국 해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대서양 인근에서 수송선단의 호송임무를 맡고 있던 다수의 순양함들에게, 지금 즉시 호위 임무를 종료하고 즉각적으로 비스마르크를 찾아 나설 것을 명령했습니다. 또한 영국 해군의 잠수함들은 프랑스 해안 가까이에 배치되었습니다. 이들은 비스마르크가 영국 해군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아 프랑스에 도착했을 시, 최후의 저지 수단으로 공격에 나설 예정이었습니다.


5월 24일 오후 초저녁,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다시 지평선 너머의 전함을 발견합니다. 순양함 서포크와 노포크가 도망쳐온 그 방향에서, 저 멀리 비스마르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복수의 포격을 감행했고, 비스마르크도 주포를 쏘아붙이며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양측 모두 명중탄을 내지는 못하였고, 비스마르크는 계속해서 프랑스 방향을 향해 남동쪽으로 항행하고 있었습니다.

photo026.jpg 1941년 5월 24일, 영국 해군 항공모함 HMS 빅토리어스(Victorious)의 갑판 위에 올려져 있는 소드피시 825 편대의 모습. 이들이 공격의 주역이었습니다.

같은 날 자정에 가까운 밤, 영국 항공모함 HMS 빅토리어스(Victorious)에서 발진한 '소드 피시' 뇌격기 8대가 밤하늘을 가르며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비스마르크에게 굵직한 어뢰공격을 감행하는 것이었지요. 복엽기인 한계를 지닌 이 비행편대는 저속의 속도로 밤하늘을 가르면서 비스마르크를 향했습니다. 이후, 이들이 고도를 낮추어 수면과 가까이 날기 시작했습니다. 공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2022041801709_8.jpg 영국 해군의 뇌격기, 소드 피시(Swordfish)의 비행모습. 당시로서도 매우 구시대적인 설계인 복엽기 형태의 외형과, 동체 아래에 매달려있는 어뢰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소드피시 편대가 공격을 시작하던 바로 그 시각, 비스마르크에서도 이상 징후를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밤하늘을 가르면서 자신들에게 접근해 오는 편대를 발견한 비스마르크의 대공포는 일제히 밤하늘을 향해 자신들의 총탄을 뿌려댔습니다. 아직 독일 공군의 작전영역에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외로이 대공전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빠르게 대응하던 대공포와는 다르게, 천천히 움직이던 비스마르크의 38cm 주포 또한 밤바다를 향해 거대한 불꽃을 내뿜으며 발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 위에 착탄은 주포탄은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물기둥은 거대한 장애물로, 영국 뇌격기의 비행을 방해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응전에도 불구하고, 소드피시 복엽기들은 특유의 저속 운동성을 바탕으로 공격코스를 성공적으로 비행했고, 7발의 어뢰 중 1발이 비스마르크의 우현을 강타했습니다.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영국 해군의 어뢰공격을 피하면서 격한 기동을 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게 얻어맞은 그 자리가 다시 벌어지면서, 비스마르크는 다시 많은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 공격이 끝난 뒤 약 2시간 뒤인 한밤중,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다시 한번 비스마르크에게 모습을 보여왔고, 양측은 포탄을 주고받았으나 서로 명중탄은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의 승조원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망망대해에, 홀로 영국 해군과의 분투를 하고 있는 외로운 자신들의 모습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전투 이후 비스마르크는 영국 해군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서 다시금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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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비스마르크는 영국 해군을 상대로 나 홀로 버티면서 프랑스로 향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국 해군이 이 거대한 괴수를 잡아낼 수 있을까요?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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