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을 향한 항해를 성공적으로 시작한 독일 함대는 계속해서 목표지점으로 나아갔습니다. 기상악화는 독일 함대에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고, 영국 해군은 계속해서 비스마르크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요. 영국 해군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북쪽으로 항로를 잡던 비스마르크는, 이윽고 서쪽으로 항로를 변경하였습니다. 영국 해군을 돌파하여 대서양으로 빠르게 진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당연히 영국 해군은 항공정찰을 시도하면서 비스마르크의 정확한 항로를 파악하려고 애썼지요. 날씨가 맑아지기 전 대서양으로 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5월 23일 저녁 19시 즈음, 양측 주력함들은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레이더에 미상의 함선이 포착되었던 것입니다. 이 함선은 "비스마르크는 발견했다"는 무전을 발신하면서 황급히 퇴각하였는데, 비스마르크 옆에 있던 프린츠 오이겐이 이 통신을 잡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함선은 바로 영국 해군의 중순양함 서포크였고, 이는 곧 영국 해군이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것과 동일했습니다. 이후엔 다른 순양함은 '노포크(HMS Norfolk)'와 조우하게 되었고, 비스마르크는 주포를 쏘아 이를 쫓아냅니다.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은 빠르게 항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포크와 노포크, 영국 중순양함 2척으로부터의 추격을 뿌리쳐야 했습니다.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영국 해군 본부에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줄 것이고, 이는 곧 대서양의 모든 영국 해군이 달려온다는 말과 같았으니까요. 독일 해군에게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빠르게 치고 나가, 망망대해 속으로 사라져 버려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5월 24일 새벽, 양측의 함대는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함대의 선두에서 항행하던 프린츠 오이겐은 전방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식별하였습니다. 이는 적 함선의 연돌에서 나오는 연기였고, 이를 본 독일 함대는 전투 준비를 서두르게 됩니다. 영국 함대 또한 독일 함대보다는 몇 분 늦긴 했지만, 이들을 포착하고 전투 대형으로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함대의 경우, 영국 함대가 경순양함으로 이뤄진 소규모 분견대로 생각했으나, 이는 착오였습니다. 영국 함대에는 영국의 자랑, '후드'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드에 탑승해 있던 영국 홀랜드 제독은, 빠른 속도로 항진하여 비스마르크를 덮치려고 기동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전투 진형을 펴지 못한 상태로 워낙 급박하게 들어간 데다, 독일 함대의 위치가 더욱 유리하였습니다. 양측의 함선은 더욱 바빠졌습니다. 서로 다급하게 사거리를 측정하고, 제원을 산출했습니다. 서로 간에 조용한 10여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조용한 새벽의 대서양 바다마저도 숨을 죽인 듯했습니다.
첫 포문은 영국 해군의 '후드'가 열었습니다. 후드의 첫 사격이 개시된 이후, 나머지 영국 함대도 모두 포문을 열고 독일 함대를 저지하려 했습니다. 세계 최강의 영국 해군의 첫 공격이었던 것입니다. 후드에 이어, 영국 해군의 수훈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도 주포를 사격했습니다.
영국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와 치열한 교전중인 전함 비스마르크의 모습. 독일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에서 촬영됨.
독일 해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프린츠 오이겐과 비스마르크도 주포를 쏘아붙이며 저항했지요. 독일 함대의 입장에서는 빠르게 승부를 결판 지어야 했습니다. 시간을 끌면 영국의 주력 함대가 몰려올 것이 자명했으니까요. 상호 간에 포탄을 주고받는 포격전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대로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10분이 지났습니다.
후드에게 38cm 주포의 거대한 일제사격 실시중인 전함 비스마르크의 모습. 독일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에서 촬영됨.
새벽 6시, 비스마르크가 다섯 번째의 주포 사격을 감행했습니다. 거대한 38cm 주포 8문은 새벽의 미명을 뚫고 영국 함대의 기함이자 자랑, 순양전함 후드로 거침없이 나아갔고, 이윽고 후드의 후방 마스트에 직격 했습니다. 이후, 후드의 최대 약점으로 손꼽혔던 얇은 측면장갑을 뚫고 나간 이 포탄은, 후드의 후미 탄약고에서 대폭발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이 대폭발은 후드를 그야말로 두 동강 내어버리고 말았고, 약 1,500여 명이 탑승해 있던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약 3분 만에 빠르게 침몰하면서 대부분의 수병들이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침몰해버린 영국 순양전함 HMS 후드(hood)의 모습을 그린 기록화.
독일 해군에게는 굉장한 행운이, 영국 해군에게는 말할 수 없는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양측 모두가 확실한 침몰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불기둥과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이 아닌, 주포 사격을 주고받던 교전 초반의 '럭키샷'으로 영국 해군의 자랑인 후드가 대서양 아래로 사라져 버린 것은 양측 모두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홀로 남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몇 분간 교전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프린스 오브 웨일스도 비스마르크의 치명적이고 정확한 주포 사격에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비스마르크의 일제사격이 그대로 전함의 지휘부가 탑승한 '함교'에 그대로 직격, 함장과 조타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함교 근무자가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지속된 교전에 의해 주포탑이 모두 기능고장을 일으켰고, 후방주포탑 1개소만이 외로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부상을 입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함장 리치 대령은 퇴각 명령을 내렸고,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의 사격을 두들겨 맞으면서도 겨우 사거리 밖으로 퇴각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에 독일 해군은 다시 정상침로로 변경, 다시 대서양을 향한 항행을 계속했습니다. 완벽한 독일 해군의 압승이었습니다. 후드의 침몰은 독일 해군에게는 '해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영국 해군에게는 뭔지 모를 불안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그 불안감 이후 다른 감정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 그리고 복수였습니다. 이제, 영국 주력함대의 모든 함선은 혈안이 되어서 찾아 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