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그 이후의 이야기들.
1941년 5월 27일, 독일 해군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거대 전함 KMS 비스마르크(Bismarck)는 굉음을 내면서 대서양의 심해를 향한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유일한 전함 간의 포격전이었던 이 전투의 종료 이후에도 비스마르크에서 유출된 연료는, 마치 사냥꾼에 의해 쓰러진 거대 맹수의 피가 흩뿌려진 것처럼 대서양의 검푸른 바다 위에 뒤섞여 넘실거렸습니다.
방금까지도 비스마르크와 치열한 교전을 치렀던 영국 순양함 HMS 도셋셔(Dorsetshire)가 바다 위에 표류하고 있는 비스마르크의 생존자들을 향해 접근했습니다. 이윽고 도셋서의 현측에는 구출용 밧줄이 바다로 내려지고, 비스마르크의 생존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그 밧줄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구출은 계속되지 못했는데, 도셋셔의 인근에서 잠수함의 잠망경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하고, 빠르게 해역에서 퇴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날 이른 저녁 시간, 독일 U-보트인 U-74가 해역에 도착하여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수면으로 부상한 이후, 아직까지 생존해 있던 승조원을 구출하기 위한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당 해역에 잔존해 있던 영국 항공기가 공격을 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겨우 3명 만을 구출하고 다시 잠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다음 날인 28일, 뒤늦게 독일 공군의 폭격기 편대가 해당 해역에 도착했으나, 상황은 이미 종료된 이후였습니다. 이들은 영국으로 향하고 있던 영국 구축함 2대를 발견하여 폭격을 가했고, 그중 1척의 구축함이 이 폭격에 당해 50여 명이 사망하고 중파당하고야 맙니다. 그러나 독일 공군의 이러한 작전은 늦어도 너무 늦은 작전이었습니다.
독일 공군이 비스마르크의 항공지원요청을 거부했던 가장 큰 이유는 '기상악화'였었습니다. 그러나 그 악화된 기상상황에서도 날아올라 비스마르크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던 영국의 소드피시 뇌격기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리고 열악한 독일 해군의 수상함 전력에 있어서의 비스마르크의 존재감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결정은 너무나 아쉬운 결정이었습니다.
소드피시의 활약도 물론 빛났지만, 당연히 누가 뭐라 해도 최전선의 수훈감은 영국 전함으로 이뤄진 수상함대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였습니다. 전투 초반부터 비스마르크와 포화를 주고받으며 스스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또 비스마르크의 연료누출을 시키는 등의 활약을 했기 때문이었지요.
비스마르크 사냥 작전이 끝난 이후, 수리를 모두 마친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지중해에서 호송임무에 종사하다가,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의 팽창위협이 증가하자 이를 막기 위한 영국 동양함대의 기함이 되어 인도양으로 향합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해군답게, 완전히 지구 반대편으로의 작전적 배치전환이었지요.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의 항공대에 의한 진주만 기습으로 인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순양전함 리펄스는 동맹인 미국을 돕기 위해 출항하였으나, 항공지원 전력의 부재로 같은 해 12월 10일 벌어진 말레이 해전에서 두 척 모두 일본 항공대에 의해 격침당하고야 맙니다. 비스마르크를 사냥할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그들 스스로가 항공전력 없이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이렇게, 2차 세계대전 도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전함 간의 혈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함 간의 포격전에서 양측이 모두 느낀 바는 동일했습니다. 이제 크고 육중한 전함의 시대는 가고, 항공기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이는 말레이 해전에서 당하고만 영국 해군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독일 해군도, 이 작전을 마지막으로 적극적은 수상함대의 작전은 위축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 - 티르피츠의 원투펀치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 상황. 이제 독일은 마지막 남은 대형전함이자 비스마르크의 자매함인 KMS 티르피츠(Tirpitz)의 안전을 확보하고, 남아있는 수상함대의 최대 존재의미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더 많은 U-보트가 대서양으로 출격하여 영국과의 통상파괴전을 지속해야 했습니다. 오직 U-보트만이 마음 놓고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대서양에서의 통상파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 KMS 프린츠 오이겐의 승조원들은, 비스마르크의 침몰 소식을 듣고 매우 크나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충격에 빠져있을 새도 없이, 함선을 정비하고 차후 작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미, 독일 해군의 수상함대에겐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 해군의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프랑스의 브레스트 항구에서, 그들은 또 다른 기습작전을 준비합니다.
영국 해군의 코앞에서, 완전히 허를 찌르는 새로운 기습작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