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부학

4화 – 페인트 아래의 울음소리

by 나리솔


4화 – 페인트 아래의 울음소리



서울 외곽의 소리 없는 콘크리트 포식자, 영화 병원은 다시 천천히 아가리를 벌렸습니다. 소연이라는 이름이 모든 기록과 보고서에서 사라진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마치 현실 자체가 그녀를 코드 속 오류처럼 지워버린 듯했죠.

새로운 인턴 지수 씨가 병원에 왔습니다. 조용하고 성실한 , 다른 사람의 실수에도 미안해할 줄 아는 성격이었죠. 그녀는 이곳에서의 일이 친구를 잃은 고통과 텅 빈 침묵 속에서 보냈던 밤들을 잊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가장 보잘것없는 임무였습니다. "새로운 입주자"를 받기 전에 404호 병실을 청소하는 것. 문 앞에서 지수 씨는 얼어붙었습니다. 이곳의 공기는 복도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마치 건물이 단순히 숨 쉬는 것이 아니라, 먹잇감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습니다.

안에서 병실은 석양의 짙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벽 자체에서 배어 나오는 듯했고, 모든 것을 날 간 색깔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지수 씨는 장갑을 끼고 젖은 스펀지를 벽에 가져다 댔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갓 칠해진 회색 페인트 아래에서 나지막하고 축축한 흐느낌이 들려왔습니다. 지수 씨는 움찔했고, 스펀지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끊어질 듯 가빠지는, 마치 누군가 손으로 입을 막고 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새 페인트가 거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거품에서는 인간의 눈물과 의심스러울 정도로 닮은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왔습니다. 벽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 내가 가면… 난 또다시 그 애를 버리는 거야, — 지수 씨는 소연 씨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삭였습니다. 그녀는 스패출러를 들고 몸서리치며 페인트를 한 조각 벗겨냈습니다. 그 아래에는 콘크리트가 아니었습니다. 희고 미세한 구멍이 있는 피부였습니다. 따뜻하고. 살아있는. 가느다란 솜털과 지수 씨가 수천 개 중에서도 알아볼 만한 아주 작은 점이 있었습니다.

붉은빛이 새로운 힘으로 번뜩였습니다. 지수 씨는 공포에 질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녀의 그림자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 바닥에는 그녀의 놀란 심장 박동에 맞춰 뛰는 더러운 얼룩이 번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자가 있어야 할 곳의 공기를 잡으려 했지만, 손가락은 허공만 움켜쥘 뿐이었습니다.

주변의 벽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페인트 아래의 피부는 건물이 고통스러운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팽팽해지고 이완되었습니다. 구석에서는 쩝쩝거리는 소리와 축축한 긁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치 칼이 연골을 갈아내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지수 씨는 출구로 달려갔지만, 문 손잡이는 부드럽고 뜨거웠습니다. 그녀가 움켜쥐자 금속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손잡이 자체는 비틀린 인간의 혀로 변했습니다. 거칠고 축축한 혀는 그녀의 손목을 힘겹게 휘감으며 피부를 핥으려 했습니다.
— 지-수… — 목소리가 바로 그녀의 귓가에서 들려왔습니다. — 날 도와줘… 여기 너무 좁아…

벽에서 얼굴이 천천히 밀려 나왔습니다. 그것은 소연 씨였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끔찍하게 수직으로 늘어져 있었습니다. 입은 낚싯줄로 단단히 꿰매져 있었고, 실은 살을 파고들었지만, 말은 지수 씨의 뇌 속으로 직접 파고들었습니다.
— 그녀는 치료하는 게 아니야… 우리를 재료로 삼아 무언가를 만드는 거야… 천장을 봐… 저기 네 아버지가 있어… 바닥을 봐… 저기 네가 잊었던 사람들이 있어…

지수 씨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천장은 수천 개의 뒤얽힌 사람의 손가락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손가락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마치 그녀의 머리카락을 향해 열렬히 뻗어 나오는 말미잘 같았습니다.

갑자기 붉은빛이 꺼졌습니다. 어둠은 끈적한 타르처럼 변했습니다. 지수 씨는 보이지 않는 축축한 손길이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겨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고, 이어서 피부마저 벗겨냈습니다. 한 겹 한 겹씩. 조심스럽게. 사탕 포장을 벗기듯이.
— 넌 아주 젊고 매끄럽구나… 너의 기여는 값질 거야, — 뒤편에서 교정자 존재의 목소리가 쉰 소리로 들려왔습니다. — 너의 피부는 1층 복도 보수 공사에 완벽할 거야… 균열이 너무 많거든…

텅 빈 병원 안에 단 하나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길고. 가빠지는. 인간의 것이 아닌. 그리고 갑자기 그 소리는 거대한 물고기가 끈적한 진흙탕에 떨어지는 듯한 축축하고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끊겼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영화 병원의 원장은 1층 복도를 걸어갔습니다. 그는 방금 보수한 벽 앞에서 멈춰서,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 위로 손바닥을 쓸어 넘기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 훌륭한 작업이야… 거의 이음새가 보이지 않아.

그리고 그의 손 깊은 아래, 벽 속에서, 콘크리트와 아직 완전히 합쳐지지 못한 단 하나의 눈동자가 얇은 페인트 막 아래에서 미친 듯이 회전하며, 영원히 도달할 수 없게 된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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