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기록
생각해 보면 내가 원치 않는 감정에서 벗어났던 순간들은, 시선의 각도를 아주 살짝 비틀어낸 찰나들이었다. 그것은 결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처음에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기분과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는 날카로운 짜증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 저녁, 친구에게 이 상황을 털어놓으며 웃음 섞인 농담으로 바꾸는 순간, 가슴속에 꽉 묶여있던 매듭이 스르르 풀린다. 사건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안의 공기는 한결 가벼워진다.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정적 속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그 빈자리를 거대한 낭떠러지가 아닌 ‘내가 다시 자라날 수 있는 여백’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감정이 고인 물처럼 썩어가는 것 같고, 끈적한 안갯속에 갇힌 듯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나 자신에게 이런 문장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래,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이것은 마술 지팡이가 아니다. 빛이 비치는 쪽으로 무거운 고개를 억지로 돌리는, 아주 뻑뻑하고 고된 과정이다.
감정이란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다.
지금 당장 회복하지 못해도 괜찮다. 가라앉은 감정의 바닥에서 그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한참을 머물러 있어도 좋다. 사람의 마음은 즉시 복구되는 버튼이 달린 기계가 아니니까. 시선을 바꾸는 것조차 버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그저 멈춰 서서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언젠가, 이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날이 올 거라는 믿음. 그 가느다란 믿음의 끈 하나가 우리를 다시 숨 쉬게 한다. 상황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그 상황을 초월할 힘을 이미 품고 있다.
결국 삶이란 내게 일어나는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향해 내가 내놓는 가장 고요하고, 정직하며, 깊은 답변이다. 그리고 그 답변은 떠들썩한 투쟁 속이 아니라, 아주 긴 침묵 끝에 우리 안에서 조용히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