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내놓는 가장 나다운 답변

조용히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기록

by 나리솔


​내 삶이 내놓는 가장 나다운 답변



생각해 보면 내가 원치 않는 감정에서 벗어났던 순간들은, 시선의 각도를 아주 살짝 비틀어낸 찰나들이었다. 그것은 결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처음에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기분과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는 날카로운 짜증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 저녁, 친구에게 이 상황을 털어놓으며 웃음 섞인 농담으로 바꾸는 순간, 가슴속에 꽉 묶여있던 매듭이 스르르 풀린다. 사건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안의 공기는 한결 가벼워진다.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정적 속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그 빈자리를 거대한 낭떠러지가 아닌 ‘내가 다시 자라날 수 있는 여백’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감정이 고인 물처럼 썩어가는 것 같고, 끈적한 안갯속에 갇힌 듯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나 자신에게 이런 문장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래,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이것은 마술 지팡이가 아니다. 빛이 비치는 쪽으로 무거운 고개를 억지로 돌리는, 아주 뻑뻑하고 고된 과정이다.

​감정이란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다.


​지금 당장 회복하지 못해도 괜찮다. 가라앉은 감정의 바닥에서 그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한참을 머물러 있어도 좋다. 사람의 마음은 즉시 복구되는 버튼이 달린 기계가 아니니까. 시선을 바꾸는 것조차 버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그저 멈춰 서서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언젠가, 이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날이 올 거라는 믿음. 그 가느다란 믿음의 끈 하나가 우리를 다시 숨 쉬게 한다. 상황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그 상황을 초월할 힘을 이미 품고 있다.


​결국 삶이란 내게 일어나는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향해 내가 내놓는 가장 고요하고, 정직하며, 깊은 답변이다. 그리고 그 답변은 떠들썩한 투쟁 속이 아니라, 아주 긴 침묵 끝에 우리 안에서 조용히 완성된다.

작가의 이전글착각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