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언제나 착각에서 시작되는가
사랑의 시작은 대체로 착각이다.
사랑을 촉발하는 착각들을 우리는 착각이 아니라고 착각한다.
애초에 그것이 착각임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그 착각에 휘말린다.
만약 우리에게 ‘착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을지도 모른다.
아무 연고 없이 누군가를
나의 세계 한가운데에 놓고야 마는
그 맹목적인 사랑은
어쩌면 1/100,000 정도의 확률로만 허락되는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었을 것이다.
착각이 사랑의 촉발탄을 뿌리면
곧 마음의 눈이 멀어진다.
이성은 서서히 물러나고,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둘 사이의 어떤 사실들은
조용히 객관성을 잃고,
오로지 사랑을 발화시키기 위해
다른 얼굴을 쓰게 된다.
사랑의 발화 앞에서,
논리는 착각의 재료로 위장하여 몸을 감춘다.
우리는 논리를 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저 이것이 ‘운명’이라고 부른다.
두 사람 사이의 사소한 공통점을 발견하여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치 위대한 발견인 것처럼 착각한다.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비슷한 상처를 가졌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은
우리는 상대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이해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착각은 잔인하면서도 자비롭다.
우리를 속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사랑할 용기를 준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정확히 보았다면,
아마 아무도 쉽게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히 보이는 상대의 미소 뒤에 숨은 피로를,
다정한 말투 아래 숨어 있는 이기심을,
우리는 애써 보지 않음으로써
사랑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랑은
진실 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랑은 늘,
조금은 왜곡된 빛,
조금은 흐릿한 시야,
그리고 기꺼이 속아주려는 마음 위에서 시작된다.
착각은 거짓이지만,
그 거짓 위에서 태어난 감정만큼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우리는 결국
착각 속에서 사랑하고,
착각이 벗겨진 자리에서
사랑을 시험받는다.
그리고 때로,
그 착각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착각이 아닌 사랑을
배우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