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붙잡는 법을 먼저 배웠다. 기회를, 사람을, 감정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까 봐 손에 힘을 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다. 어떤 건 꽉 쥘수록 모양이 망가진다는 걸. 유리잔을 너무 세게 잡다가 미끄러뜨리고, 관계를 너무 단단히 묶다가 숨 구멍을 잃는 것처럼. 그래서 이제 나는 놓아주는 연습을 한다.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맑게 가지고 있기 위해서.
놓아준다는 건 포기와 다르다. 포기는 방향을 잃는 일이지만, 놓아줌은 방향을 새로 정하는 일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바꿀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모으는 태도. 이를테면 어제의 말실수 대신 오늘의 인사를 다정하게 고치는 일, 지나간 기대 대신 지금 가능한 한 끗의 성장을 선택하는 일. 작은 방향 수정이 일상을 조금씩 따뜻하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괜찮다”는 말을 너무 빨리 꺼낸다.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얼른 괜찮아져야 할 것 같아서. 그럴 때는 잠깐 멈춰도 된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용기, 그 말 뒤에 찾아오는 고요를 통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통과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덜 상처받는다. 흉터가 아닌 결로 남아, 다음에 같은 자리에 바람이 지나가도 덜 아프다.
하루의 끝에서 나는 오늘 놓아준 것들을 적어 본다. 되돌릴 수 없는 말 한 줄, 맞지 않는 일정 하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던 습관 몇 가지. 그리고 잡아둔 것들도 함께 쓴다. 아침 물 한 컵, 점심 산책 10분, 저녁의 짧은 안부. 잃은 것과 남은 것을 같은 페이지에 적다 보면, 균형이 눈에 보인다. 삶은 늘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애씀을 방해하지 않는 것.
사람 사이에서도 놓아줌은 중요하다. 이해를 강요하지 않고, 침묵의 속도를 존중해 주는 일. “언제든 괜찮아, 준비되면 말해줘”라는 문장이 관계를 지켜준다. 상대의 빈자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빈자리에서 서로의 모양을 다시 알아가게 된다. 가까움은 간격을 없애는 게 아니라, 좋은 간격을 찾는 일이니까.
무엇을 놓아줄지는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지난 계절의 후회를, 어떤 사람은 내일의 과한 계획을,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미움과 비교를 놓아준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놓아준 뒤에 남는 건 대체로 가벼움이다. 숨이 깊어지고,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그게 삶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잘하고 있어. 계속 이렇게 천천히.”
나는 오늘도 연습한다. 손에 힘을 빼는 법, 말에 여백을 남기는 법,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법.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연습이니까. 때로는 다시 꽉 쥘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알아차리는 일이다. 지금은 붙잡을 때인지, 놓아줄 때인지. 그 구분만 알아도 우리는 덜 헤매고, 더 따뜻하게 머무를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하다. 놓아주자.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단정히 다시 안아 주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조용한 태도다. 천천히, 단정히, 다정하게.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