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화 엄마의 웃음이 사라지던 날
빛을 잃은 내 세상
나는 그 날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아려서,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그런 기억이지. 아마도 그 때가, 내가 난생 처음으로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던 순간이었기 때문일 거야. 그 감각은 아직도 내 심장을 쥐어짜는 듯 아려온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또다시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았던 그 사고 후였어. 나는 그 때 학교에 있었어. 해맑게 교실 창밖을 내다보던 평범한 날이었는데, 그 시간이 끝나자마자 내 세상은 완전히 뒤집혔지. 엄마는 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집으로 향하고 계셨다는데, 술에 취한 아버지가 몰던 차는 순식간에 길 밖으로 튕겨져 나갔대. 아버지는 운 좋게도 경미한 찰과상 몇 군데만 입은 채 멀쩡했지만, 엄마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숨은 턱 막혔어.
엄마가 집으로 실려 왔을 때의 모습은 아직도 내 눈앞에 아른거려. 창백하고 핏기 없는 얼굴, 축 늘어진 사지, 그리고 미동도 없이 침대에 누워 힘없이 신음하던 그 모습. 나는 작은 몸을 일으켜 침대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어. 혹시라도 엄마의 고통을 건드릴까 봐 숨소리조차 조심했지. 엄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애썼어. 혹시라도 언제나 내게 힘을 주던, 그 익숙한 엄마의 미소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하지만, 엄마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미소도, 온기도, 심지어 생기마저도 찾을 수 없었지. 그저 고통이 심해질 때마다 작게 터져 나오던 가늘고 힘없는 신음 소리만이 차가운 방 공기 속을 헤맬 뿐이었어.
나는 조용히 엄마의 옆에 앉아, 차갑게 식어버린 엄마의 손을 꼭 잡았어. 그 작은 손으로 엄마의 모든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꽉 쥐었지. 그리고는 목소리마저 떨리던 내가 속삭였어.
“엄마… 다 괜찮아질 거죠?”
엄마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눈빛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어. 그 눈빛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득한 절망과 체념이 담겨 있었지. 그 시선은 나를 통과해 마치 다른 세상의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어. 그때부터였을까. 엄마는 더 이상 내게 활짝 웃어주지 않았어.
아버지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어. 사고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듯 보였지. 오히려 그는 이전보다 더 술에 빠져 지냈어. 엄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무엇인가를 말하려 해도, 아버지는 손을 휘저으며 귀찮다는 듯 외면했어. 내 어린 눈에는 아버지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곳에는 엄마의 고통도, 사고의 책임도, 가장으로서의 무게도 없는,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채 현실을 외면하는 아버지만이 존재했지.
엄마는 오랜 시간 동안 몸을 회복해야만 했어. 하지만 그 사고 이후, 엄마의 웃음은 희귀한 보물처럼 사라져 버렸어. 이따금 겨우 띄우던 미소마저도 예전과는 달리 힘겹고 어딘가 그늘진 모습이었지. 그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나 지쳐 있었어. 엄마의 손은 늘 미세하게 떨렸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지는 듯 힘들어했어. 평소에 거뜬히 해내던 사소한 집안일조차 엄마에게는 벅찬 노동이 되었지.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아주 일찍이 어른들의 짐을 나눠지는 법을 배웠어. 난로에 불을 피우고, 차가운 물을 길어오고, 마당을 쓸고 닦는 일들을 내가 도맡아 하기 시작했어. 때로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어. “엄마, 쉬세요. 제가 다 할게요.”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엄마의 빈자리를, 그리고 그녀의 모든 짐을 온전히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어린 어깨에 세상의 무게가 버겁게 얹히는 느낌이었어.
하지만 그 모든 육체적인 고통과 힘든 노동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어. 그것은 바로, 한때 나의 세상이자 나의 빛이었던 사람이 눈앞에서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었어. 엄마의 활기 넘치던 기운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그녀의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어. 그 고통은 깊고도 처절했지.
나는 어느 저녁을 선명하게 기억해. 우리는 단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어. 어둠이 짙게 깔린 방 안, 난로의 희미한 불꽃만이 우리를 비추던 순간이었지. 엄마는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로 나직이 속삭였어.
“너는… 강해져야 한다. 나중에 내가 없더라도, 너는 반드시 강해야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어. 엄마의 따뜻했지만 이미 차가워지기 시작한 품속에서, 내 안에 처음으로 섬뜩한 감정이 싹텄어.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나 외로움이 아니었어. 앞으로 나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그 거대한 '공허함'의 시작이었지. 마치 내 안의 따스한 무언가가 뿌리째 뽑혀나가는 듯한 싸늘한 느낌이었어.
나는 그 순간 직감했어. 아버지는 결코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없을 거라는 냉혹한 현실을. 그리고 언젠가, 나의 유일한 빛이던 엄마마저 이 세상을 떠날 거라는 잔인한 진실을. 그렇다면 이제 나 혼자 남겨지는 순간이 올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짐을 내 작은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어.
그리고 바로 그 때가, 내가 난생 처음으로 단순한 어린아이의 슬픔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을 온몸으로 느꼈던 순간이었어. 그 공허함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내 안에서 텅 빈 정적처럼 울려 퍼질 것이라는 것을 그 어린 나는 이미 알았던 것 같아. 나의 유년은 그렇게 엄마의 사라져가는 미소와 함께, 영원히 침묵의 공간으로 변해버렸지. 하지만 그 깊은 공허함 속에서 나는 홀로 설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