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화 인형 대신 탱크
도난당한 유년, 다시 피어나는 나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린 시절’이라는 그 단어 자체가 나를 비껴간 것 같다고. 마치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허락된 특별한 선물 상자 속에서, 내 것만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동화 속 그림처럼 반짝이는 어린 시절이 있었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예쁜 인형의 머리를 땋아주거나, 반짝이는 리본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달콤한 사탕을 몰래 입에 넣으며 학교 운동장을 울리는 까르르한 웃음소리가 그들의 유년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차가운 벽, 눅눅한 습기 냄새, 그리고 너무도 일찍 시작된 혹독한 어른의 무게가 짓눌러 갈가리 찢겨져 버렸다. 그것은 차갑고 투박한 손에 의해 강탈당한,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에 가까웠다.
특히, 아버지가 '선물'이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 나는 이 모든 비극을 더욱 선명히 깨달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느닷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의 모습은 늘 그랬듯 텁수룩하게 자란 수염에 싸구려 술과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문을 닫는 소리는 마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억지로 선포하려는 듯 요란했고, 그는 쿵 하고 소리를 내며 식탁 위에 낡은 상자 하나를 던져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자부심이 번져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해낸 영웅이라도 되는 양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 이거 받아라. 너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내 심장은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 인형일까?’ 엄마와 함께 시장을 지나다 우연히 유리창 너머로 보았던,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예쁜 인형. 단 한 번이라도 그 인형의 머리를 곱게 아주고, 작은 드레스를 입혀주고 싶다는 열망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웠었다.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평범하게, 그냥 ‘여자아이’처럼 보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서 드러난 것은… 초록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포탑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난감 탱크였다. 차갑고 단단하며, 그 어떤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 없는. 내 안에 꿈틀대던 작은 희망의 불꽃이 그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흡족한 듯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미소가 번져 있었다.
“넌 강해져야 한다. 여자애들이 인형이나 갖고 노는 건 다 부질없는 짓이야. 이 탱크야말로 진짜 물건이지.”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공허함이 가슴 한가운데서 순식간에 커져갔다. 이 선물에 웃어야 할까, 아니면 비명을 질러야 할까.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지만, 이미 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여들고 있었다. 왜? 왜 다른 여자아이들에게는 사랑스러운 인형이 주어지는데, 내게는 이 차가운 탱크가 주어졌을까? 왜 나를, 나답게 살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하는 것일까? 나는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나를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강철처럼 강한 존재로 만들겠다는 알 수 없는 집착에 사로잡힌 듯했다. 그는 매일 나를 차가운 벽에 세워놓고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자, 한 번 더! 너는 강하니까 할 수 있어!” 그는 명령처럼 외쳤고, 나는 작은 이빨을 꽉 깨물고 팔이 후들거려 주저앉을 때까지 이악물고 버텼다. 무거운 물 양동이를 나르게 하고, 마치 남자아이처럼 마당을 미친 듯이 달리게 했다.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가끔은 “나는 여자아이예요” 하고 항변하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의 차가운 웃음소리나 짜증 섞인 “징징거리지 마!” 하는 외침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여자아이로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이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는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지치고 근심 가득한 눈을 보았다. 마치 나를 보호하고 싶지만, 무거운 짐과 피로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엄마는 나를 옹호하려는 듯 입을 열려 했지만, 이내 그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된 하루 노동 후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엄마에게는, 남편과 논쟁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침묵은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었다.
학교에서의 시간은 나의 아픔을 더욱 증폭시켰다.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반짝이는 머리핀을 자랑하고, 새로 산 인형들을 보여주며 깔깔 웃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귓속말을 나누고, 예쁜 옷차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행복해 보였다. 나는 교실 한구석에 찌그러져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뿐이었다. 가끔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려고 시도했지만, 그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수군거렸다. “쟤는 남자애 같아.” 특히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거의 밀듯이 잘라버린 이후에는 그 말은 더욱 심해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등 뒤에서 “치마 입은 남자애”라는 잔인한 속삭임을 들었다. 그 말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심장을 꿰뚫었다.
나는 애써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괜찮아, 그저 머리카락일 뿐이야, 잠시면 다시 자랄 거야.’ 하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잔인하리만큼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거울 속 나를 보며, 한때 존재했던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소녀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버지가 준 장난감 탱크는 내 방 한구석 선반 위에 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끔 나는 그 차가운 플라스틱 탱크를 손에 쥐었다. 그 딱딱한 장난감에게 억지로 역할을 부여했다. 때로는 나를 이곳에서 아주 먼 곳으로 데려다줄 ‘탈출 기계’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상상하는 강을 유유히 떠다니는 ‘고독한 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놀이들은 외롭고, 고통스러웠으며, 공허했다. 그것들은 내게 즐거움을 주기는커녕, 내 안의 깊은 공허함을 더욱 부각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인형이나 예쁜 옷을 부러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웃음’을 부러워했다. 다른 여자아이들이 비밀을 속삭이고 함께 즐겁게 뛰어놀 때 터져 나오던 그 가볍고 해맑은 웃음소리를. 나에게는 그런 웃음이 없었다. 나의 웃음은 마치 목구멍 어딘가에 영원히 갇혀 버린 듯, 세상 밖으로 한 번도 터져 나오지 못했다.
바로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송두리째 도둑맞았다는 것을. 나는 아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해야만 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순간, 나는 이미 나의 삶이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 같다. 평범한 장난감과 근심 없는 꿈이 존재할 수 없는, 나만의 혹독하고도 고독한 길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