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을 열고: 나의 새벽을

3장. 축제가 없는 집: 내 안의 별을 키우다

by 나리솔


3장. 축제가 없는 집: 내 안의 별을 키우다



이 시린 기억들을 다시 꺼내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픔은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처럼 심장을 스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나의 강인함을 깨닫게 해 준다. 어떤 밤에는 글자들이 튀어나와 내 손끝을 아리게 하고, 어떤 낮에는 문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 숨조차 쉴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리고 서러웠던 순간들이 불현듯 찾아와 마음을 두드리며, 내가 지나온 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세상의 다른 아이들에게는 찬란한 ‘축제’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일찍이 알게 되었다. 생일날이면 케이크 위에 촛불을 켜고 행복을 빌며 가족과 친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을 테고, 반짝이는 선물 상자를 조심스레 열며 환호했을 것이다. 연말에는 집집마다 오색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꼬마전등이 반짝이고, 친구들과 가족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수놓았을 터였다. 그 빛나는 풍경은 내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집은 달랐다. 그 모든 축제는 마치 우리를 비껴간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차갑고 낯선 풍경으로만 느껴졌다.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새해 전야가 되면, 마을 전체는 별처럼 반짝였다. 이웃집 창문마다 반짝이는 불빛이 따뜻한 기운을 뿜어냈고, 아련한 캐럴 소리가 잔잔하게 밤하늘에 퍼져 나왔다. 하지만 우리 집은 늘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 화려한 장식 대신, 엄마는 낡고 투박한 식탁 위에 가장 소박한 음식들을 올렸다. 갓 삶은 감자와 푸석한 빵 한 조각, 운이 좋아 구할 수 있었던 청어 한 마리가 전부였다. 나는 그 초라한 식탁을 바라보며, 창밖으로 보이는 이웃집 아이들이 촛불 꽂힌 케이크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조용히 부러워했다. 내 입에서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가슴 속에서 작고 시린 부러움이 피어올랐다. 그 부러움은 마치 한겨울 밤의 찬 공기처럼 나의 어린 심장을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이런 '특별한' 날일수록 더욱 집에 없었다. 그는 우리 가족보다 술과 친구들을 택했고, 술에 취한 채 며칠 밤낮을 방황하다 돌아오곤 했다. 그가 집에 올 때면, 온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술 냄새와 함께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 목소리는 차가운 집 공기 속을 헤집으며 우리의 잠을 깨웠고, 나의 어린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술기운에 취해 주머니에서 싸구려 사탕 한 봉지나 눅눅한 과자 상자를 툭 던지곤 했다. 나는 그 작은 ‘선물’ 자체보다, 아버지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는 그 사실 하나에 찰나의 기쁨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에 대한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쁨은 늘 짧았다. 선물을 건네고 나면 늘 뒤따라오는 고성과 욕설, 폭력은 나의 작은 기쁨마저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나는 그 앞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런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애써 괜찮은 척 하려 했다. 피곤에 절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지.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고, 눈 속에는 내가 너무나 일찍 읽어낼 수 있었던 깊은 슬픔이 고여 있었다. 그 슬픔은 마치 내 마음을 쥐어짜는 듯 아팠고, 나는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말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여덟 살쯤 되었을까, 나는 작은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우리 집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어요?” 엄마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은 아련했고, 목소리에는 세상의 모든 피로가 담겨 있었다. “행복은 트리에 있는 게 아니란다. 행복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린 마음으로는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많은 아픔과 결핍 속에서, 단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 나는 예쁜 인형을 품에 안고 싶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싶었다.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웃고 뛰어놀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에 쥐여진 건 언제나, 아버지가 무심하게 건네준 그 차가운 장난감 탱크뿐이었다. 그것은 '여자아이는 강해져야 한다'는 무언의 명령처럼 내 어린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아, 나를 압도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해맑게 물었다. 그들의 순수한 물음은 나에게는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생일에 뭐 선물 받았어?”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작게 대답했지. “아무것도.” 아이들은 내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깔깔 웃었지만,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냉혹한 현실이었고, 나는 그 현실 속에서 외롭게 고립되어 있었다.

나는 아주 일찍이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축제가 없는 집은, 어쩌면 더 이상 기뻐할 줄 모르는 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외부의 화려함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고 믿게 될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결핍 속에서 나는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꽁꽁 언 몸을 녹여주던 한 잔의 뜨거운 차가 주는 위로. 난로의 미지근한 온기가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여주는 감각. 엄마의 지친 얼굴에 겨우 띄운 희미한 미소 속에서 진심을 읽어내는 것. 이 모든 소소하고 사소한 순간들이 내 삶을 지탱하는 작은 별들이 되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고통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어쩌면 바로 그곳에서, 나의 진짜 강인함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축제가 없는 집에서, 나는 내 영혼 속에 나만의 축제를 창조하는 법을 배웠다. 외부의 화려함이 없었기에,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 순수한 기쁨을 찾고 지켜내는 법을 익혔다. 나의 어린 시절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처럼 풍요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은 나를 더 단단하게, 그리고 더 깊은 내면의 빛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제 안다, 그 어둠 속에서 피어난 작은 별들이야말로 나의 삶을 영원히 밝혀줄 가장 소중한 축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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