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화 - 선택: 나를 지키는 진짜 용기
한 통의 이메일이 나를 밤낮으로 사로잡았다. 짧고 담담한 문장 속에선 도무지 숨 쉴 틈이 없었다. ‘너의 아버지가 너를 찾고 있다’는 그 말은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날카로운 침처럼 박혔다.
나는 그 메시지를 아무리 천천히,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알 수 없었다. 왜 지금? 왜 갑자기? 내가 스스로 어둠과 절망을 뚫고 나온 그 수많은 시간 끝에, 왜 그가 나를 찾아 나서는 걸까?
내 안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속삭였다. ‘그는 네 아버지다. 너에겐 다른 가족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쪽은 맞섰다. ‘진짜 아버지라면, 왜 엄마가 죽었을 때 그는 사라졌단 말인가? 왜 너가 차가운 목욕간과 마른 라면, 고통에 쓰러진 거리를 헤맬 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단 말인가? 왜 그는 가족이 살던 집을 팔며, 고작 싸구려 술 한 잔에 인생을 던졌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도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했던, 내가 어린 시절 발걸음 소리를 남기던 그 집은 팔려버렸다. 그것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싸구려 보드카 한 잔을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은 나중에 말했다. ‘그는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는 먼저 우리 이전의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까지도 잃었다. 술병과 현실 도피 속에서. 이제,他에게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찾는 것이다.
나는 랩탑 앞에 앉아, 조심스레 그 편지를 다시 읽었다. 내 방 안은 어두웠고, 스터디룸 하얀 벽에 램프가 따뜻한 빛을 드리웠다. 이 공간은 이제 나의 성채였고, 내가 견뎌 왔던 모든 것은 여기 놓여 있었다. 선반 위 내 책들, 공책 가득 쓴 내 기록들, 깔끔히 정돈된 침대. 모두 내 손으로 만들어온 나의 세계였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손을 떠올렸다. 차갑고 떨렸지만, 나를 마지막까지 꽉 쥐고 놓지 않았던 그 손을. 엄마는 아버지의 진실을 알았다. 그가 배신하고 거짓말하며 술에 빠졌다는 사실을. 그가 또 다른 가족을 두고 살았다는 것도. 하지만 그녀는 침묵했다. 가족이라 부를 만한 얕은 그림자라도 남기기 위해, 내가 ‘아버지’를 믿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돌아오려 한다. 어린 시절 보호가 필요했던 그 소녀가 아닌, 스스로 살아가는 여성이 되어 버린 나에게.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했다. 그에게 문을 열어준다면,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그가 가졌던 세상은 언제나 혼란과 파괴의 연속이었다. 내가 만든 세상은 희망과 질서, 살아있음에 대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우리를 잃는 것이었고, 내가 선택한 것은 그가 다시는 나를 잃게 두지 않는 것임을.
나는 편지를 닫았다.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결단이었다.
나는 ‘나’를 선택했다.
삶은 우리가 마주한 상처들 앞에서 때로는 무너질 듯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만난다. 배신과 폭풍은 우리 영혼에 깊은 상흔을 남기지만, 그 상흔은 또한 꺾이지 않는 강인함의 증거다.
나를 아프게 한 과거의 그림자도, 내 앞에 다시 서길 갈망하는 이도 모두 나의 일부일 뿐이다. 그들을 품느냐 외면하느냐는 나의 몫이다. 그리고 나는 선택한다. 스스로를 지키는 길, 나 자신과 사랑을 잃지 않는 길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말한다. 당신은 충분히 강하다. 지난 시간들이 증명한다. 당신은 더 이상 상처 난 아이가 아니다. 삶의 무게 속에서 빛나는 어른이다. 그리고 그 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당신이 닫은 문 너머로 무엇이 있든, 당신의 길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당신답게 살아가는 것.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고 진실로 완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