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소리

25장 — 거울 속 목소리

by 나리솔



25장 — 거울 속 목소리 (존재의 심연에서 비친 그림자, 그리고 그 너머)



세상은 천천히, 그리고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 장대한 황혼의 품속으로 기울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던 석양의 마지막 불꽃은 먼 서쪽 하늘을 집어삼키며, 도시의 오랜 건물들 벽면 위로 길고 아련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빛을 받은 벽들은 마치 수많은 이야기와 비밀을 켜켜이 간직한 고서의 빛바랜 페이지들처럼 황금빛과 핏빛으로 물들었다. 붉은 벽돌 하나하나는 살아 있는 세월의 흔적을 담은 문장이 되고, 굳게 닫힌 창문들의 윤곽은 숨겨진 의미를 지닌 단어처럼 아련하게 떠올라, 도시 전체가 거대한 시집의 한 페이지처럼 보였다. 금빛으로 타오르던 노을은 점차 깊은 주홍색으로, 이내 차갑고 쓸쓸한 보랏빛으로 부드럽게 변색되며, 대지를 한 폭의 거대한 우주적 예술 작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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