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억은 언제나 조용히 찾아온다.
눈에 보이는 모습도, 귀에 들리는 말도 아닌 —
한 줄기 향기로.
그 향기는 바람에 스치는 잎사귀처럼 가볍게 시작되다가,
순식간에 온 마음을 휘감으며
닫혀 있던 과거의 문을 열어젖힌다.
따뜻한 빵 냄새는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할머니 부엌의 새벽,
세상이 단순하고 따스하던 날들,
두 손 안에 햇살을 담을 수 있을 것만 같던 순간.
가을 사과의 향기는 조금 다르다.
그 속에는 달콤함과 함께
너무 빨리 흘러가버린 시간이 스며 있다.
첫 고백의 떨림,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
그리고 끝내 오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던 긴 밤.
책 속에 낀 마른 꽃 향기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불러낸다.
넘기기 두려운 페이지 위에
더 이상 곁에 없는 이의 숨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기는 속삭인다.
기억은 무게만이 아니라, 온기도 된다고.
비 내린 저녁 공기 속에서
은밀히 말한다.
“너는 살아 있다. 너는 기억한다. 너는 아직 여기 있다.”
기억은 때로 아프다.
그러나 기억 없는 삶은 창 없는 방처럼 공허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이 묘하고 다정한 과거의 향기를 들이마신다.
그 안에는 상실과 희망,
눈물과 웃음이 섞여 있다.
그리고 그 가느다란 멜랑콜리 —
바로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살아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