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너에게서는 오래된 책장의 종이 냄새가 난다
비 오는 오후,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따라 흘러내리는 기억,
텅 빈 머그잔에 남은 커피의 쓴 향,
두 손으로 감싸 쥐고도 채워지지 않는 온기.
네가 떠난 자리마다 작은 먼지가 내려앉는다.
길모퉁이 편의점의 형광등,
익숙한 골목의 귤 껍질 냄새,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너를 찾아내고 만다.
낯선 풍경도 오래 바라보면 결국 우리의 풍경이 되듯,
너 없는 저녁도 언젠가 내 일상이 될까.
하지만 어쩐지 나는 아직
너와 나눴던 사소한 웃음을 되뇌며 걷는다.
비의 리듬이 내 발자국을 따라오고,
나는 다만 느린 걸음으로 하루를 지워간다.
by 나리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