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 친구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
어느 날 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저녁에 부엌에 마주 앉아 있었고, 찻잔 속의 차는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창밖에는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기억 깊은 곳에서 단어들을 하나하나 꺼내듯 천천히 말했고, 나는 그 말들이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직접 겪은 체험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적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아. 적은 천둥 같은 존재야. 거친 말투, 질투 섞인 눈빛, 독이 묻은 목소리로 스스로를 드러내지. 폭풍우 같은 존재라서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창문을 닫을 준비를 할 수 있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이어갔다.
“하지만 ‘친구가 아닌 사람’은 전혀 달라. 겉으로는 진짜 친구와 다르지 않아. 곁에서 웃어주고, 안부를 묻고, 심지어 위로의 말도 건네지. 하지만 마음속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있어. 숲 속에서 마치 흰 버섯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독을 품은 ‘사탄버섯’과 같아. 겉은 깨끗해 보여도 안은 독으로 가득 차 있지.”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표식은 두 가지야. 첫 번째는 가장 분명해. 어려움이 닥쳤을 때, 진짜 친구는 자기 상황이 힘들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쓰러진 널 붙잡아 주고, 끝까지 곁에 남아 있어. 하지만 친구가 아닌 사람은 항상 변명을 찾지. ‘미안, 시간이 없어’, ‘몸이 안 좋아’, ‘사정이 있어서’… 혹은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해. 결국 넌 혼자가 되지. 이건 거칠고 뚜렷한 증거야.”
그는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두 번째 표식은 훨씬 더 무섭지. 거의 눈에 띄지 않거든. 네게 불행이 닥쳤을 때, 직장을 잃거나, 건강을 잃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그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쳐 지나가. 아주 미묘한, 그러나 분명한 기쁨의 흔적. 마치 네 고통이 그에게는 작은 만족을 가져다주는 듯한 표정이지.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낯선 표정’이라고 불렀어. 그는 이렇게 말했지. ‘소위 친구라는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들으면 억지로 미소를 감추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은근히 기뻐한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정말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돌로 새겨진 고대 조각상의 얼굴처럼, 차갑고 순간적인 ‘반쯤 미소’. 아주 잠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그는 황급히 태도를 바꿔서, ‘안 됐다’며 탄식하고, 위로하고, 조언까지 해준다. 하지만 목소리 어딘가에는 여전히 이상한 만족감이 숨어 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처음엔 잘 눈치채지 못해. 네 마음은 이미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하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순간이 불쑥 떠오르지. 그리고 깨닫게 돼. 착각이 아니었다는 걸. 언젠가는 그 ‘친구 아닌 자’가 가면을 벗고 네 맞은편에 서게 되지. 언제나 그래.”
우리는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얼굴과 마음을 구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독버섯과 흰 버섯을 얼마나 쉽게 혼동할 수 있는지.
그는 쓸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렇지만 말이야… 그 또한 우리에게 필요해. 그런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이 보도록 가르쳐 주거든. 마치 거울처럼, 누가 진짜이고 누가 아닌지를 비춰주지. 덕분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더 잘 알게 돼. 진짜 친구는 많지 않아. 하지만 그들의 따스함은 진짜야. 그 온기는, 수많은 ‘친구 아닌 자’들을 겪고 난 뒤에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그날의 이야기를 나는 오래 기억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더 세심해졌다. 남의 얼굴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 왜냐하면 때로는 우리 안에서도 그 차가운 ‘반쯤 미소’가 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알아차린다면, 멈출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