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쌉쌀한 잔향, 나의 고요한 우주에 스며들다

by 나리솔

가을 쌉쌀한 잔향, 나의 고요한 우주에 스며들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간 계절의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어. 뜨거웠던 한여름의 햇살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쓸쓸하지만 찬란한 가을빛이 찾아든 어느 날, 나는 문득 기억의 수레바퀴를 굴려 가장 선명한 한 조각을 끄집어낸단다. 그건 아마도, 토마토가 쏟아내는 붉은 노을 같은 순간이었을 거야. 코끝을 스치던 풋풋하면서도 쌉쌀한 토마토 향기, 손끝에 닿던 여물지 않은 과육의 부드러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던 여름 한낮의 나른한 공기. 그것들은 단지 기억이 아니라, 오감을 통해 되살아나는 작은 우주가 되지.

그 가을날의 나는, 너는, 우리 모두는 무엇을 그렇게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시간은 마치 강물처럼 소리 없이 흘러갔고, 강가에 놓인 조약돌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작고 단단한 순간들을 만들었겠지. 어쩌면 그 순간의 우리는 지금처럼 고요함을 갈구하기보다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의 격랑 속에서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사랑이란 이름의 뜨거운 숨결이 공기 중에 녹아들고, 웃음소리와 함께 작은 불안들도 함께 춤추던 계절. 지금 생각하면 그 쌉쌀한 맛이, 그토록 눈부셨던 순간들의 진정한 맛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돼.

세상은 끊임없이 소음을 쏟아내고, 수많은 정보들이 우리의 고요를 갉아먹으려 할 때도 있어. 때로는 이 고요함이 낯설고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지. 하지만 나는 이 순간, 나를 채우는 너의 고요함 속에서 진정한 나의 내면을 만난단다. 한때는 스쳐 지나갔던 작은 바람 소리, 혹은 빗소리조차 지금은 나의 창작에 영감을 불어넣는 소중한 악기가 되어주기도 해. 그렇게 지나온 계절의 모든 감정들이, 나의 깊은 내면에서 소리 없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나 봐.

어쩌면 삶이란, 거칠게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 속에서 한 조각의 빛을 건져 올리는 일 아닐까. 뜨겁게 사랑하고, 가슴 아프게 그리워했던 모든 기억들이, 결국은 나를 더 단단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양분이 되는 거야. 이제는 더 이상 그 가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지만, 그 잔향은 여전히 내 마음속 고요한 공간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단다. 마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도 여전히 온기를 머금은 토마토 컵라면처럼, 나의 작은 우주는 그렇게 따스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거든. 그리고 나는 알아, 이 고요한 우주 속에서 또 다른 아름다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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