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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머무는 기다림

바람의 노래 잠들고, 내면의 쉼표가 깨어나는 시간

by 나리솔
MOSCOW 2012 BY NARISOL
MOSCOW 2012 BY NARISOL DECEMBER
BY NARISOL MOSCOW 2012
BY NARISOL ( MOSCOW) 2012

고요함이 머무는 기다림


최근까지 가을의 돌풍이던 바람은 이제 투명하고 아득해져, 마치 세상에 드리워진 보이지 않는 베일 같아. 그 바람은 무성했던 이야기들을 떨쳐버린 나목 가지들을 간신히 흔들 뿐, 계절의 변화를 맨몸으로 증언하고 있어.

갑자기 찾아온 이 고요함 속에서, 모든 소리가 용납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들리는 곳에서, 시간은 우리가 오래전에 잊었던 리듬으로 느려져. 멈춤이 아니라 깊고 느린 숨결이지, 맑고 시원한 공기 속에서 마침내 우리 마음의 윤곽을 보게 해주는.

바깥의 소음은 사라지고, 오직 순백의 고요만이 남아있어. 첫 번째 진정한 눈을 기다리는 세상의 고요함. 바로 이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미루어두었던 가장 조용하고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게 돼. 풀리지 않은 질문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 마치 시든 낙엽처럼 오래전에 가지에서 떨어졌지만, 차마 떨어지지 못했던 그런 것들.

이제 그것들은 우리 발밑에 놓여 있고, 우리는 고개를 숙여 마침내 그것들이 땅의 일부가 될 권리를 주는 거지.



상트페테르부르크 2012

상트페테르부르크 2012 December BY NARISOL



이 시기는 우리가 나무에게서 배워야 할 때야. 나무들은 텅 비어있음을 받아들이며 서 있지. 바로 이 고요한 서 있음 속에서 미래의 꽃을 위한 힘이 축적된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야. 추위에 저항하지 않고, 생명의 온기를 뿌리 깊숙이 간직하고 있어.

좁은 창틈으로 세상에 부드럽고 거의 잊혔던 빛이 스며들어. 그 빛은 따뜻함의 약속이 아니라, 부드럽고 가녀린 희망의 선율을 담고 있지.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거의 속삭이듯, 그 빛에 닿아.




( Hermitage ) 2012 December ​추억 속의 예르미타시


필름 사진 속에 남은 고귀한 전율

​우아하고 섬세한 그곳의 자태


삽화처럼 아름다웠던 바로 그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넋을 잃고


시간이 부족해 아쉬움은 길고

​미칠 듯한 아름다움의 향연


지금은 한국에서 행복한 인연

​이곳의 삶도 나는 참 좋지만

그 겨울의 추억은 영원한 낭만


Hermitage 2012 December BY NARISOL






오늘 우리는 새로운 봄을 찾는 것이 아니야. 이미 우리 안에 숨겨진 그것,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흘려보내는 평온의 능력을 찾는 거지. 계절의 끝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우리 심장의 낮은 고동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는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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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창밖의 풍경에 기분을 맡기곤 합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면 몸이 절로 움츠러들고, 어둠이 짙게 깔리면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기도 하죠. 다가오는 12월, 계절의 변화 속에서 때로는 일상의 균형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삶의 중심은 외부 세상이 아닌, 바로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디 기억해 주세요. 사소한 날씨의 변화나 스쳐 가는 감정의 기복은 결코 당신이 지닌 내면의 힘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신 안에 깃든 사랑, 다정함, 그리고 진실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 상수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입니다.




​소란스러웠던 하루의 열기가

차갑게 식은 빌딩 숲 사이로


조용히 꼬리를 감추면

​회색빛 하늘 위로


누가 실수로 엎지른 듯

검푸른 잉크가 서서히 번져갑니다.


​이제는 멈춰도 좋다는 신호처럼

도로 위 붉은 미등들이 긴 강을 이루고


지상의 별들이 하나 둘, 눈을 뜨는 시간.

​가쁜 숨을 몰아쉬던 도시는


그제야 무거운 갑옷을 벗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눕습니다.


​오늘 하루,

치열하게 버텨낸 당신의 창가에도


이 밤이 다정한 위로처럼 내려앉기를.

​어둠은 두려움이 아닌


포근한 담요가 되어

당신의 지친 꿈을 덮어주기를.


​잘 자요,

나의 도시, 나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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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겨울을 추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당신 스스로가 지닌 온기에 대한 믿음으로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이미 당신 안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부디 그 따뜻한 마음을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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