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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물결 위에 피어난 빛

삶의 잔물결이 빚어내는 찰나의 아름다움과 깊은 위로

by 나리솔

흔들리는 물결 위에 피어난 빛


어제 비가 그치고 나서 공기는 수정처럼 투명해졌지만, 아침은 무겁고 낮게 깔린 고요함으로 나를 맞이했습니다. 내 창문에서 바라보이는 작은 연못은 잔잔했고, 먹물처럼 어두워 나무들의 단조로운 실루엣만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깊고 어두운 이 물은 우리 마음의 메타포입니다.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슬픔과 울지 못한 눈물, 그리고 말 없는 한(한)의 깊은 그리움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하늘도, 그 속의 흐린 때도 모두 품어 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한 줄기 가느다란 가을 햇살이 연못 위를 비추었어요. 물 전체를 환하게 밝히진 않았습니다. 대신 가벼운 바람이 일으킨 작은 잔물결이 햇살을 수천 개의 반짝이는 빛 조각으로 흩뿌렸습니다.

이 빛 조각들은 단순한 반사가 아닙니다. 빛과 움직임이 어우러져 춤추는 생명이었습니다. 빛은 완벽한 정지에서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잔잔하고 고요한 연못은 온전한 태양을 비추지만, 수많은 빛의 조각은 오직 물이 움직일 때만 태어납니다.

생각해 보세요. 빛이 나타나려면 마주하는 장애물이 필요합니다. 물결, 흔들림, 바로 그 ‘불완전함’이 우리 삶의 어려움이고, 마음에 더해지는 걱정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크고 눈부시며 매끄러운 행복을 기대합니다. 한없이 맑고 햇살 가득한 날처럼 살고 싶죠. 하지만 이 작은 빛 조각들은 속삭입니다. 진짜, 쉽게 잡히지 않는 행복은 바로 이 찰나에, 깨지고 부서지는 듯한 수많은 순간들의 반짝임 속에 있다고.

햇살이 찻잔 가장자리를 스치고, 어린 시절로 데려가는 멜로디가 귓가에 울려 퍼지며, 이웃집 고양이가 창턱에서 온기를 찾는 그런 평범하지만 소중한 순간들 — 이 모든 찰나가 삶이라는 흐름 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빛의 파편들입니다.

그 빛 조각들은 금세 사라져 버리지만,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빛은 언제나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마음이 깊다면, 어둠도 그만큼 깊겠지요. 그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건 물 전체를 미처 밝히려 애쓰기보다, 빛이 스며들도록 허락하는 일입니다. 가장 작고 뜻밖의 순간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부드럽고 순간적인 빛 속에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빛나는 태양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두운 심연도 바람이 표면을 스치면 별빛이나 낯빛을 반사해 낼 수 있다는 조용한 상기입니다.

나는 연못에서 눈을 떼고, 다시 구름 뒤로 숨는 태양을 바라봅니다. 빛의 조각들도 조용히 사라졌지만, 내 마음속에는 따뜻함이 남아 있습니다. 빛은 떠난 게 아닙니다. 그저 또 다른 순간, 또 다른 물결이 일어나길 기다릴 뿐입니다. 나는 그 빛을 조용히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것입니다.




너의 마음이라는 깊은 연못이 때로는 어둡고 고요할지라도, 작은 바람이 일으킨 잔물결 속에서 언제나 너만의 고유한 빛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완벽하게 빛나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모든 흔들림과 불완전함이 바로 너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빛이 될 테니, 따뜻한 마음으로 그 순간들을 품어주렴.


나리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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