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열매들

작은 열매 하나가 피워낸, 기적 같은 사랑의 씨앗

by 나리솔


다채로운 열매들


중년의 현수가 대형 마트를 걷고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건장한 체구, 고급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방금 막 회의를 마치고 저녁 식탁에 올릴 간단한 음식을 사러 들른 참이었다. 그는 식당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회사의 사장이었지만, 어쩐지 남들 앞에서 식사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사람이었지.

그는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지만, 머릿속엔 온통 일 생각뿐이었다. 아니, 일보다는 누나 생각으로 가득했다. 누나가 아프다는 소식. 오랜만에 받은 짧은 문자 한 통. 서로 연락이 뜸했기에 전화로만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을 뿐, 지난 삼십 년간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 누나 미연에게는 미연의 삶이, 그에게는 그의 삶이 있었다.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독신 남자의 삶. 물론 스쳐 가는 인연들은 있었지만, 제대로 가정을 꾸리지는 못했다.

현수는 누나에게 돈을 보냈다. 그는 누군가를 걱정할 때면 늘 돈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했다. '꽃이라도 주문해서 보내야 할까? 여자들은 꽃을 좋아하잖아.' 하지만 너무 아픈 사람에게 꽃은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었다. 왠지 슬픈 '헌화'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으니까.

누나 미연에게는 미연의 삶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이, 이제 곧 끝날지도 모른다…

그때, 가느다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열매! 열매!"

거대한 홀 중앙의 진열대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용기 안에는 파란 블루베리, 붉은 라즈베리, 탐스러운 딸기…

밖은 혹독한 겨울이었다. 차가운 바람과 눈으로 뒤덮인 회색빛 도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어둠이 깔린 계절이었지만…

환한 마트 안에는 흰 머리카락에 가느다란 땋은 머리를 한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작은 손으로 다채로운 열매들이 담긴 용기 위를 살포시 쓸어보고 있었다. 커다란 푸른 눈동자는 황홀경에 빠져 반짝였다. "열매! 엄마, 열매!"

그 옆에 서 있던 젊은 엄마, 털모자 아래로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고, 낡은 패딩 점퍼와 빛바랜 부츠를 신은 그 엄마는 지금 막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가격표에 적힌 터무니없이 높은 숫자를 바라보며 딸에게 속삭였다. "나중에 사 줄게, 나연아! 엄마 돈 받으면. 우리 다음에 또 와서 엄마가 꼭 사 줄게!"

아이는 아무것도 졸라대지 않았다. 그저 감탄하고 있을 뿐이었다. 열매들을 바라보는 순수한 기쁨을 엄마와 나누는 중이었다. 그리고 현수에게도 보여주었다. "열매! 많아! 아저씨, 봐요, 얼마나 많은데요!"

정말 많았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것들 중에서도 아주 작은 한 조각조차도 얻을 수 없는 법. 저 싱싱한 열매들은 너무도 비쌌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아이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순간, 아련한 옛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누나, 올리브나무 농장에서 함께 블루베리를 따던 기억. 작은 바구니에 열매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담던 누나. 어린 누나는 저 아이처럼 하얗고 작았고, 푸른 눈을 가졌었지. 누나는 그 자리에서 열매 하나 먹지 않고, 바구니에 정성껏 담기만 했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 누나는 그 바구니를 현수에게 내밀었다. "먹어, 오빠! 아깝지 않아, 이건 오빠 열매야! 먹어!" 누나가 모은 모든 열매를 그에게 건넸다. 누나가 가진 전부를.

심장이 뭉클해지고 목구멍이 메여왔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현수는 눈물을 흘릴까 봐 겁이 났다. 그는 허둥지둥 열매 상자들을 움켜쥐어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동화 속 곰처럼 흥얼거리며 말했다. "자, 이 열매들은 예쁜 나연이에게 줄 거예요! 엄마가 허락해 주시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 많이 담아서 장바구니에 넣는 거야! 이건 요정의 숲에서 나연이에게 보낸 열매들이란다!"

현수는 울음을 참기 위해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러자 아이는 기뻐서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열매들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세 살짜리 아이는 놀라운 것을 보면 그렇게 믿을 수도 있으니까…

엄마는 완강히 거절했지만, 현수의 진심 앞에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다. 현수가 너무나도 한 곰 같았기 때문일까. 엄마도 웃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이 그녀 역시 열매들이 나연이를 위한 것이라고,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아주 조금은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스물두 살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기적을 믿었다…

그 순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인생이라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즐거웠다. 그들이 열매가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작은 아이가 웃고, 엄마가 웃고… 계산대 직원마저 웃었다. 현수가 요정의 숲에서 온 소포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곰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발을 동동거렸다.

누나 미연에게 현수는 꽃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열매를 주문했다. 가장 좋고 싱싱한 블루베리, 라즈베리, 딸기… 한가득 배달시켰다! 누나는 현수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울었다. 거대한 바구니에 담긴 카드에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곰 아저씨가 나연이에게 보내는 열매!"

그리고 누나는 결국 병을 이겨내기로 결심했다. 앉아서 열매를 먹으며, 조금은 울면서, 인터넷으로 가장 좋은 병원을 찾아보았다. 남동생이 보내준 돈이 있었다. 남동생은 걱정될 때면 항상 돈을 보내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현수와, 작은 나연이, 그리고 나연이 엄마 수진은 서로를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아주 좋은. 다채로운 열매들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거다. 왜냐하면 인생은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흐름이니까. 슬프고도 기쁜, 다양한 이야기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반드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법. 어쩌면 그 이야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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